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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글

엄마의 밥맛 / 천하 제일의 기예

엄마의 밥맛 / 천하 제일의 기예

언제 정말 맛있는 밥을 먹었던 가? 죽지 못해 밥 먹고, 모래 씹듯 밥 먹는 경우도 있고, 반찬이 좋아 밥맛은 정작 느끼지 못하는 때도 있으며, 밥맛이라고 해도 실제는 식사 전반에 대한 입맛이지 밥 자체만의 맛은 지나치기가 다반사(茶飯事)일 수도 있다. 햇 벼 거두어 디딜 방아에 새로 찧고 작은 무쇠 솥에 안쳐 아궁이엔 새 솔가리 곱게 때서 포르르 끓인 다음, 박자를 맞춰 불을 멈춰서 뜸 들이고 다시 한바탕 더 때서 밥 물 잦힌다. 노릇 노릇 살짝 눌어 누룽지도 깔아 만들면서 기름이 반지르르 흐르는 따뜻한 밥은 한 조각의 예술 작품. 모락모락 김이 오르면서 햇 쌀밥은, 무엇에 비길 수가 없을 정도로 진정 지고(至高)의 맛이었다. 울 엄니께서 지으신 그 밥맛이! 하늘 아래 다시 없을 생각에 오늘 내 마음엔 그리움이 맺힌다.

우리 어머니들의 밥 짓는 솜씨가 필시 세계 1등이었으니, 이런 밥 짓는 예술을 어느 나라에서 들어봤는가? 언제나 새벽같이 제일 먼저 새로 솟은 우물의 샘물 길어 오시고, 쌀 담가 미리 불리어 솥에 안친 밥 물은 손바닥 두께 쯤 물을 붓는다. 끓기까지 괄한 불 세게 때고 김이 올라올 때 쯤 이면 불길 줄여 끓어 넘지 못할 정도로 조절하려고 잠시 불길 물려서 천천히 뭉긋하게 타는 만화(慢火)로 뜸 드는 데크레셴도(decrescendo)의 박자를 맞춘다. 1, 2경(頃) 멈추는 그 사이 국거리와 반찬을 작은 솥에다 준비 하고 나면 큰 솥에 다시 불을 더 때서 밥물 잦힌다. 이땐 쌀이 밥 물을 흠뻑 먹어서 겉 물은 다 흡수되므로 물이 줄었으니 끓어 넘을 염려가 없고 자연히 밥 물이 잦아들어 쌀이 익어 맛있는 밥이 된다. 밑 밥이 타지 못하도록 적당한 타이밍을 재서 다시 남은 열기로 뜸을 들이면, 남은 수분으로 천천히 뜸 들면서 바닥은 살짝 누런 빛이 나도록 약간 눋게 만든다는 말이다. 기름이 잘잘 흐르도록 착 달라붙는 완벽한 밥이 취사 된다. 밥을 푸고는 물을 누른 밥에 부어두면 식사를 마치고 날 때 쯤 이면 푹 불어서 구수한 숭늉이 되어 차(茶) 대신 우리는 늘 후후 불면서 마지막에 그걸 마시면서 식사를 마무리했다.

우리 어머니들은 대제학(大提學)을 지낸 실학자 서유구(楓石 徐有榘/ 1764-1845)의 농서(農書)인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 조선의 옹희잡지(饔凞雜志)의 방법을 어떻게 모두 배우셨을까? “우리나라 밥 짓기는 천하에 이름났다.”는 그걸 말이다. 청(淸)나라 장영(張英)이 조선 외교로 와서 보고 그 밥 짓는 우리 솜씨를 크게 칭찬했던 것이 아니겠나. 반유십이합설(飯有十二合說)에 기록했다, “조선 인은 밥을 잘 지어 밥알에 윤기가 있고 부드럽고 향기가 나며, 솥의 밥이 고루 익어서 기름지게 했다. 밥 불은 약해야 좋고 물은 적게 하는 것이 옳은 이치인데, 함부로 밥을 하는 것은 하늘이 내린 물건을 낭비하는 일이 된다.” 지금이야 전기밥솥이 말까지 하면서 다해 주지만, 우리 엄마들의 경험과 기술은 준비, 불길의 조절, 쌀과 물의 기막힌 비율, 타이밍의 리듬, 실로 솜씨 그 자체이니 천하 제일의 특별한 기예(技藝)가 아니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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