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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글

공자의 학습 태도/ 信而好古

공자의 학습 태도/ 信而好古

논어(論語 述而篇)에 “공자가 이르기를 나는 나면서 부터 저절로 아는 것이 아니라, 옛 것을 좋아하고 민첩하게 그것을 추구했던 것이라고 했다(子曰 我非生而知之者, 好古敏以求之者也).” 스스로 공자는 태생적으로 지식인이 된 것이 아니라 옛 문화를 아주 좋아했고, 부지런하고 민첩하게 그 지식을 추구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타고난 지식의 성인은 없다는 말이니, 스스로 그는 많은 지식과 많은 지혜를 추구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많이 듣고 많이 기억하기 위하여 부지런히 배우기를 즐겨했던 결과라는 의미가 된다. 공자가 공개한 자신의 성공적 비결은 당시의 사회에서 유행하던 한 관점인데 태어나면서 아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렇게 즐겨 배웠다는 말이다.

공자는 몰락한 귀족의 가정에서 태어나 세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안씨(顔氏)가 공자를 데리고 지금의 산동성 곡부(曲阜)로 가서 정착했으니, 모친의 독려는 그로 하여금 부지런히 학문을 좋아하는 정신을 갖게 했을 것이다. 17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공자 스스로 자활 해야 했으니 생존을 위하여 한 작은 관리의 집에서 창고와 가축을 관리하는 책임을 맡아 직무를 다했다. 생활이 힘들어도 지식의 추구는 견지하였으니 독서에 전심하고 스스로 공부에 열중해서 사방으로 가서 묻고 들었다. 힘들게 일하면서도 공부하고 생활이 어려워도 지식의 추구에 기쁨을 즐겼으니 훗날 강의를 하면서 ‘빈이락(貧而樂)‘이라 함은 그의 체험이 아니랴. 미루어보면 귀족의 자녀는 아니라 도 그들의 당시 정규 교육과 한 가지로 공자도 일찍이 공부를 좋아해서 각고의 노력으로 학문을 하면서 민첩하게 널리 물어서 귀족 자녀들의 필수 과목인 육예(六藝)를 익혔고 예(禮)를 터득했다.
자신의 지식 영역과 시야를 확대하기 위해 공자는 밖으로 나가서 유학(遊學)도 했으니, 기록에 따르면 첫 번째로 당시 서울[京師]이었던 낙읍(洛邑)에 가서 장홍(萇弘) 대부(大夫)를 뵙고 고대의 가무와 음악 이론을 청하여 교육을 받았다. 그를 지극히 공경하면서 강해를 열심히 배우고 스스로의 견해도 밝혔으리니 그의 견문이 확대되었고 장홍의 칭찬도 받았다. 또 서울의 당시 다른 학자들도 찾아가 토론을 했으며, 주(周)나라 황실(皇室)의 수장리(守藏吏)였던 위대한 사상가 노자(老子)를 뵙고 예(禮)를 청하여 배웠으니 허심탄회한 마음으로 누구에 게나 배움을 청하였다. 심지어 7살 아이에게도 가르침을 구하였으니 배움에는 스승이 따로 없었던 태도가 아닌가.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仲尼弟子列傳)에 그런 방법에 대한 기록이 있다. “하루는 진자금(陈子禽)이 공자의 제자 자공(子貢)에게 물었다, 중니는 그런 넓은 지식을 배웠는가? 자공의 대답이,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의 나라 다스리는 도리가 완전히 없어졌는데, 현인(賢人)이 중요 부분을 기억하고 있으나 어질지 못한 사람은 단지 아주 일부분만 기억하지만, 우리 선생님은 무엇인들 배우지 않는 것이 있으시겠는가. 선생님은 고정적인 스승이 없으셨소.” 이로 미루어보면 공자의 호학(好學)을 실증 하였으니 부단한 그 학습의 태도를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