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소쇄원은/ 小學 實行
소쇄원(瀟灑園)은 양산보(梁山甫/ 1503-1557)의 별서(別墅) 곧 지금의 별장과 같은 곳이었다. 대나무로 유명한 담양(潭陽)이라 입구의 대 숲은 우리나라에선 이색적인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북쪽에선 가늘고 키 작은 대나무가 대부분인데 서너 길이나 될 높이의 굵은 죽림이 꽉 결려서 울창함이 딴 세상처럼 느껴진다. 내겐 두 번째이지만 별반 변하지 않아 소박함은 예대로 인 것 같아 반가웠다. 다만 지금 가뭄이 심하여 철철 넘치던 개울 물이 소리조차 숨죽여서 그 특징을 잃어버린 게 안타까웠다. 그땐 가을이라 홍시(紅柿)가 바닥에 떨어졌는데, 이 5월엔 보리수 작은 열매가 빨갛게 익었네. 여기의 핵심인 광풍각(光風閣) 제월당(霽月堂)은 본 모습 그대로 간직한 채 양산보의 은거(隱居)를 그대로 말하고 있는 듯 54년의 짧은 일생을 처사(處士)로만 살았던 그의 소쇄(瀟灑)의 기상(氣象)은 여전히 숨 쉬고 있지 아니한 가. 여기를 찾는 지금의 관광객들은 몇이나 진실로 그의 탈속(脫俗)의 진심을 인식할까 나.
지금 50세의 자신을 늙은이[翁]이라 한다면 감이 없겠지만, 4백 년 전이야 50만 살아도 노인이라 할 만했겠으니, 또 그가 여기서 자신을 소쇄옹(瀟灑翁)이라 자호(自號)한 것은 굳이 늙은이 라기 보다는 소쇄의 주인공이란 의미로 해석함이 나도 옳다고 는 본다. 열다섯 살에 담양에서 아버지[蒼巖 梁泗源]을 따라서 한양에 올라갔을 때 정암(靜菴 趙光祖)에게서 스승이 강조한 소학(小學)부터 배웠으니 한 이태 그의 문하생이었고, 17세에 새로 생긴 현량과(賢良科)에 붙었는데, 합격자가 너무 많아서 사간(司諫)들의 요청으로 나이 너무 어린 그를 탈락 시켰다. 안타까이 여긴 임금이 따로 불러다 위로하며 지필묵(紙筆墨)을 하사했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라 그 같은 겨울 기묘사화(己卯士禍)에 스승 조광조가 유배를 갔고, 수제자인 양사언은 유배지 까지 그 유배 길을 따라가기 까지 했으나, 끝내 조광조가 사사(賜死)되는 것을 목격하자 그의 천지는 딴 세상이 되었다. 모든 꿈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가 무등산 아래 고향의 이 골짜기로 들어와 벼슬도 사양하고 두문불출(杜門不出)의 소쇄옹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실상 지금의 소쇄원은 더 아름다워졌고 문사(文士)들이 더 그윽이 읊었기에 세상에 유명해졌지만 그땐 몇 사람 문인들 말고 산속에 묻힌 채 소박한 은둔의 임천(林泉)이 아니었겠나.
인척과 문사로 맺은 남녘의 명유(名儒)들인 송순(宋純), 기대승(奇大升), 정철(鄭澈), 고경명(高敬命), 유희춘(柳希春) 등이 찾아와 소쇄원을 더 이름나게 했던 것이다. 원정(園庭)하면 지금의 강소성 소주(蘇州)가 유명하여 나도 연전에 찾아가 보았지만 인공적으로 꾸며 놓은 아름다운 정원들이 많았는데, 소쇄원처럼 자연 그대로 탈속의 순수함과는 딴판이었다. 이 소쇄옹은 이를 혹 후손이 남에게 팔지 말라 했으니 아직도 그 순수함이 보존되고 있지 아니한 가. 돌담을 두르다가 도 개울 물을 남긴 채 담을 끊고 건너서 이어 쌓은 단장(斷墻)의 특징을 여기 말고 어디서 볼 수 있는가? 처음 왔을 때는 끊어진 담장을 그대로 보존한 데 놀랐으나 그 순수하고 소박함이 소쇄원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하서(河西) 김인후가 읊은 소쇄원 48영(瀟灑園四十八詠)의 시가 이곳을 지금까지 더욱 유명하게 한 공이 있으니 소박한 경치를 옛 표현으로 은유한 품격 있는 노래인 까닭이다. 스승 정암이 강조한 소학을 실천하여 그 이름도 소쇄(瀟灑)라 하였으니 마당에 물을 뿌려 청소를 하는 것부터 날마다 실천하므로 도(道)의 실천으로 나아간다는 뜻이 아닌가. 예기(禮記 內則)와 소학(小學 明倫)에 일렀다, “모든 집안 남녀는 첫 닭이 울면 다 세수 양치(養齒)하고 옷을 입고 베개와 잠자리를 거두며, 방과 마루 및 뜰을 물 뿌려 소제 하고, 자리를 펴서 각기 그 일에 종사 한다(凡內外 雞初鳴 咸盥漱衣服, 斂枕簟 灑掃室堂及庭, 布席各從其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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