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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글

진리를 지키면 / 守眞 志滿

진리를 지키면 / 守眞 志滿

진리를 지키면 뜻이 충만해지고, 외물(外物)을 좇으면 뜻이 옮겨간다는 구절은 천자문 50번 째 시문이다, “수진지만(守眞志滿)하고 축물의이(逐物意移)니라.” 참 진(眞)이라는 한자는 옥편에서 눈 목(目) 변에서 찾아야 하는데, 그 까닭은 이 글자가 만들어졌던 옛날 옛날에는 그 눈 목자가 들어있는 부분 전체가 솥 정(鼎)자였기 때문이라는 것, 후대로 내려오면서 그것이 너무 획 수가 많고 복잡하여 단순하게 목(目)으로 줄였던 까닭이다. 그래서 진(眞)자는 본래 비수 즉 화살이나 숟가락 또는 날카로운 작은 칼인 비수(匕首) 비(匕)자 밑에 솥을 그린 모양이었다는 말이다. 그 의미는 원시 적부터 제정(祭政) 사회 구조에서 제사장과 같은 종교적 지도자가 가장 중요한 제사에 고기를 솥에 삶아서 신에게 제사를 올리기 전에 그 솥에서 숟가락이나 비수(匕首) 같은 갈고리로 찍어서 그것이 제대로 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하여 맛을 보아야 했던 것이며, 그것을 형상화한 글자가 참 진(眞)자라는 말이다. 정말로 잘 준비된 제물인 가를 확실하게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그때에는 무엇이 있었겠는가? 신에게 올리는 최고의 정성, 가장 고귀하고 올바른 것이 참 진(眞)이라, 그 진리를 지키면 뜻이 마음에 충만하다는 말이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And ye shall know the truth, and the truth shall make you free/ 요 8:32).” 예수의 선포도, 그렇게 제사장이 그 진정한 제물을 확인하는 사실이 진리(眞理)로까지 발전하였다는 그것의 자유, 그 자유는 ‘참된 이치’요, 그것은 외부적 구속(拘束)이나 그 무엇에도 얽매임이 없이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겠는가. 진리란 유학(儒學)에서도 도(道)였던 것이니, 바른 길이 되고 마땅히 행해야 할 도리(道理)였으니 결국은 유가(儒家)의 도나 기독교의 진리가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조금 더 그 글자 형성의 배경으로 말하자면, 신(神)에게 가장 순수하고 진실함을 확인하는 길이란 말이 된다.

참된 사실, 신적(神的) 진실(眞實)인 진리를 마음에 지키면 자신이 나아가야 할 의지와 뜻[志]이 마음에 가득해지게 된다는 것이 천자문의 그 수진지만(守眞志滿)이란 해석이다. 진리가, 인륜(人倫)의 도(道)가 마음에 충만한 사람이 군자(君子)요 성인(聖人)이며, 크리스천의 성도(聖徒/ saint)도 그렇게 된다. 진리로 마음을 충만히 하는 그 반대 현상을 대비 시킨 천자문의 문장이니, 진리를 마음에 가득히 채운 사람이 아니라 반대로 그 마음이 바깥의 물질(物質)이나 물건이 주는 욕망을 따라가게 되면 어찌 되겠는가? 번쩍 번쩍 하는 물욕(物慾)을 추구하고 짜릿 짜릿한 감정의 색욕(色慾)을 좆아간다면 이미 그 마음은 진리에서 멀어지고 그 외물의 욕망으로 옮겨지게 될 뿐이다. 그것이 ‘외물을 좇아가면 뜻이 옮겨간다는 축물의이(逐物意移)인 것이다. 항상 마음을 지켜서 진실과 진리로 가득히 채운 군자는 언제나 외물의 유혹을 좇아가서 마음이 욕망으로 옮겨가는 소인배(小人輩)와는 다르다고 어릴 적부터 천자문에서 가르친 것이다. “수진지만(守眞志滿)하고, 축물의이(逐物意移)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