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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글

이슬에 젖어/ 沐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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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에 젖어/ 沐露

 시간의 순환은 끊임없이 흘러 무더운 삼복이 지나면서 기압의 자연현상은 바다와 대기를 청소하는 태풍이 남쪽에서 올라오면서 혹서(酷暑)를 식히더니, 어언 내일이면 옛 사람들이 정하여 가을로 접어든다는 입추(立秋)다. 이번 주간 수많은 직장인들이 더위를 식히려고 떠났다가 여름 휴가에서 돌아오면 새로운 가을을 착수해야 하지 않겠는가. 푹 푹 찌는 듯 무더위 속에 간간이 소나기까지 내려서 들에는 잡초가 한껏 무성하여 농부들은 정신없이 바빠서 시원한 새벽에 이슬에 젖으면서 논 밭에서 일을 하고, 분주한 이들은 밤 이슬을 무릎 쓰고 길을 가고 쏘다녀야 하기에 종종 이슬에 젖는다고 하지 않았나, 그게 목로(沐露)인데 이슬에 흠뻑 젖는다는 말로 낭만(浪漫)처럼 들리면서도 곤경을 무릎 쓰는 모습을 의미했기에 새삼 현대인에게도 뭉클한 표현으로 들린다.
 
 이슬에 듬뿍 젖는다는 목로(沐露), 힘쓰고 애씀이란 간접적인 표현이다. 이슬에 젖을 수 있는 사람은 밤늦도록 또는 이른 아침에 들로 다니며 활동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목로란 열심히 힘들여 일하는 사람을 가리키니 고생을 감수하고 노력하는 사람을 은유 한다. 새벽에 골 깊은 오솔길을 걸어본 적이 있는가? 잡초에 엉킨 숲 길에서는 바지 가랑이에 이슬이 흠뻑 젖지 않을 수가 없다. 밤새 가라앉은 신선한 공기는 온 몸이 눅눅할 정도이니 풍찬노숙(風餐露宿)하는 사람처럼 고생스럽다. 바람 부는 바깥에서 밥을 먹고 이슬 맞으며 하늘 밑에서 잠을 자는[露天睡覺] 사람과 같이 들판을 가야 하는 행인의 신세, 그렇게 야외에서 밤까지 매우 고생하며 일하는 모습을 형용하는 까닭이다.

 송(宋)나라 문인 소동파(東坡 蘇軾/ 1037-1101)가 그런 시를 남겼다, “노숙풍찬의 6백 리 길(露宿风餐六百里)/ 내일 아침엔 말에게 남강 물을 마시우리(明朝饮马南江水)/ 풍찬노숙 아닌 게 없었는데(无非風餐露宿)/ 머잖아 등주에 바로 이르리(不久便到了登州).” 말을 타고서 라도 6백 리라면 며칠은 달려야 했으리니 그것도 줄곧 풍찬노숙으로, 지금은 상상하기도 힘들겠지만 옛 사람들은 고생하며 돌아다님을 바람으로 머리를 빗고 비로 목욕한다[櫛風沐雨]고, 풀숲의 오솔길을 가고 이슬 젖는 하늘 아래 잠을 잔다[草行露宿], 바람을 먹고 이슬을 마신다[餐風飮露]고 했었다. 이제 이른 아침에 일어나 이슬에 한번 젖어보자, 이 가을의 문턱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