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인의글

실학의 실행/ 星湖 三豆會

실학의 실행/ 星湖 三豆會

 온통 이념 철학과 관념론적 성리학이 만연했던 조선 사회에서 그것도 후기에 들어서면서 부터 소위 실학(實學)이라는 실질적인 학문과 실천을 추구했던 것이 실사구시(實事求是)라는 말로 요약된다. 우주의 원리가 음과 양으로 운행하고 이기(理氣)의 으뜸이 무엇이냐 하는 논쟁보다 우리가 그것이 실체의 이용에 눈을 뜬 시도였던 것이다. 그 중의 흥미로운 것 하나가 당대에 몰락한 집안의 청빈한 성호(星湖 李瀷/ 1681-1763)의 삼두회 라는 것이 있었다. 이미 그에 대한 논문을 쓴 사람도 있어 실학 연구를 하는 이들에게는 알려진 사실이나 경제 위주의 실상에서 일반인에게는 아직도 낯설지 않은가. 과거에 급제하여 정랑(正郞) 벼슬까지 했으나 후에는 고향으로 돌아가 실학의 실천적 학자로 살았던 그가 남긴 성호사설(星湖僿說)에 콩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세 가지 콩의 모임’이란 말이 삼두회(三豆會)이니, 친지들이 모여서 콩죽 한 그릇씩을 콩나물 한 접시에 콩 간장 한 종지를 곁들여 먹었으므로 ‘세 가지 콩’의 회합이 된 것이다. 그리고는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서 시회(詩會)로 시를 지으며 학문을 논하기도 했던 실천적 소 그룹 친목 활동이었다. 고희를 넘은 72세 이익이 1753년에 시작했으니 근 270년 전이다. 가난했던 선비들이 어떻게 곤경을 극복하고 생활의 기틀을 마련하여 가통을 잘 이어갈 궁리도 했다. 그것들 중에는 종계(宗契)의 시도, 특히 송(宋)나라의 재상이었던 범중엄(范仲淹/ 989-1052)의 의장(義庄), 의전(義田)이라는 것을 실행한 이도 있었다. 지금의 계(契)처럼 돈을 조금씩 서로 모아서 한 집 씩 잘 살게 해주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성호는 자산을 불려서 다 잘살게 되는 부유의 길이 아니라, 그 가난을 청빈으로 수용하면서도 근검하고 효율적인 실제적 적응 방법을 모색하고 그 위에 정신적 부요를 추구했다고 볼 수 있다.

 실로 조선 사람의 구황(救荒)에 콩이 큰 몫을 했을 것 같지 않은가? 아무리 가난해도 콩으로 만든 된장 간장을 우리가 다 먹었고, 가난해도 콩 죽을 먹었으니 공자도 가난하면 변변치 못한 콩 물[菽水]을 먹는다고 했으니 2천 년이 넘도록 동양에서 콩의 힘으로 버티어온 게 아닐까? 두부며 콩나물을 가난하던 옛날에는 싫도록 먹었고, 군대의 짠 밥도 전에는 콩나물국이 많았었다. 심지어 주전부리까지 볶은 콩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먹었으니 참으로 친근한 콩의 사람들이 우리였다. 안산에서 근년에 시작한 성호 문화제가 5월 말에 열린다는 데, 혹 여주이씨 네 성호 후예들이 삼두회 같은 활동을 지금도 하는지? 콩은 새삼 온 세계가 좋다고 관심을 끄는 건강식품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