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인의글

공자는 누군가/ Love of Learning

공자는 누군가/ Love of Learning

 동양이 성자(聖者)로 꼽는 공자(孔子/ 551-479 BC), 소위 ‘지극히 거룩한 공자(至聖孔子)는 이름은 구(丘)이고, 자호(字號)는 중니(仲尼), 후대에 그를 사람들이 높여 부르는 호(號)는 그저 자(子)라 하였으니 논어(論語)에도 흔히 그를 인용할 때도 공자가 가라사대를 “자왈(子曰)”이라 했다. 그는 지금의 산동성(山東省)에 있는 거기 연주부(兗州府)의 곡부현(曲阜縣) 사람이다.

 공자에 대한 수많은 후대의 설명이 있는데, 자타가 공인한 공자에 대한 공통점은 ‘배우기를 좋아했던 사람’이었으니 서양에 흔히 소개하기로도 배우기를 좋아한다고 ‘Love of Learning'이라 했다. 대부분이 공자의 어록(語錄)이라고 할 수 있는 논어(論語)에서도 그 첫머리에서 부터 공자는 말한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 가(學而時習之不亦說乎).” 배움을 낙(樂)으로 삼았다고 볼 수 있고, 죽을 때까지 그는 계속하여 배우고 가르쳤던 사람이었다. 그의 생각은 바로 그런 배움이 모든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이득이 되며 그 배운 바를 부지런히 가르치는 것을 다른 인간에 대한 사명처럼 여겼던 것 같다. 그 배움이란 그에게는 단순히 지식의 축적만이 아니라 배움을 통하여 도덕을 실행하고 자신의 수양(收養)을 계속하므로 실행하는 전체를 배움에 포함하고 있다. 그렇게 배우는 사람이 자신 만을 위함이 아니라 그것으로 남을 지도하며 사회와 국가를 이끌어서 태평한 인간 공동체를 이루고자 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나이가 많았고 그의 어머니는 아주 젊어서 공자를 낳았고 아버지는 아주 어렸을 때 작고 했고, 어머니도 소년 시절에 잃었으니 스스로 살아야 했으며, 청년으로 노동의 직업인 남의 가축 돌보는 일을 했지만 공부의 열정을 늘 잃지 않았다. 중년 기를 넘은 52세에 지금의 검찰 청장이나 법무부 장관과 비슷한 범죄자들을 다스리는 (魯)나라의 대사구(大司寇)가 되기도 했으나 오래지 않아 그만두고 주유(周遊)를 하면서 다른 제후 국에서 벼슬자리를 기대하기도 했으나 등용해주는 군주는 없었다. 15살에 공부에 마음을 두었다고 했으니 소위 그것을 지학(志學)이라 하고, 그때부터 음악, 수학, 고전(古典)과 역사 등을 배웠다고 했다. 뚜렷이 지정된 선생이 정해졌던 것은 아니고 많은 자료와 사람들에게 다 배웠으니 누구든지 가능하다면 모든 이들로부터 배우려 했다. 주(周)나라의 노자(老子) 등을 찾아가 배웠으나 오래 학습한 것 같지는 않다. 벼슬에 복귀하여 그 사회를 발전시키고 싶어 했지만 그를 다시 받아주는 권력자가 없어서 죽을 때까지 일생을 그에게 찾아오는 사람들의 스승이 되었기에 많은 제자들이 공 선생님, 곧 공부자(孔夫子)라 호칭 했고, 공자가 스스로 말하기를 그 배움은 실상 남을 위함에 앞서 자기를 유익하게 하는 학문이라고 설명했으니 소위 ‘위기지학(爲己之學)’이다. 공자는 배우기를 좋아했던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