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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글

治蠱元 亨/주역의 고(蠱)괘

治蠱元亨/ 주역의 고(蠱)괘


조선 후기 남인(南人)의 정치인이자 유학자인 갈암(葛庵 李玄逸/ 1627-1704)은 예조 참의로서 숙종 임금에게 주역 경연(經筵)에서 강의할 때에 이 치고의 이치[治蠱 致亨之道]를 갈파 하여 임금이 참 좋아했다. 반드시 변해야 할 것을 변화하는 다스림을 논한 것이다. 고(蠱)를 다스리매 크게 형통 한다는 이 괘는 큰 강을 건너는 것처럼 이롭다[利涉大川]는 뜻이다. 주역(周易)의 고괘(蠱卦)는 위에 간괘(艮卦)와 아래의 손괘(巽卦)가 거듭된 형상[巽下艮上]으로 산 아래에 바람이 있음을 상징한다. 마치 현대의 바코드처럼 막대를 그려서 하나의 막대와 둘로 끊어진 막대를 아래위로 6개 씩 배열하여 그것을 효(爻), 또는 여섯 개이므로 육효(六爻)라고 부른다. 이 여섯 개의 막대 모양이 하나의 효(爻)가 되는데, 이 6효의 한 셋(set)을 괘(卦)라고 말한다. 주역에 총 64개가 있어 흔히 64괘(卦)라고 부른다. 그 괘마다 형상이 조금씩 다르고 거기에 따른 상징과 뜻이 있어 이것을 해석하고 주를 붙여서 효와 괘로 설명하고 우주 만물의 이치를 풀어간다.
지금 얘기하는 것은 64괘 가운데 하나인 ‘고괘(蠱卦)’에 관한 이야기다. 이 고괘의 형상은 산 아래에 바람이 있는 형국인데, 고(蠱)자는 풀의 소재로 만든 그릇[皿]에 벌레들이 모여 있는 모형의 글자이다. 그릇이 오래되면 벌레가 꼬여서 좀먹으므로 손상되는 일이라는 이치다. 또 고괘의 형상은 산 아래에 바람이 있는 모양이라 바람이 산을 만나 돌면 사물이 흔들리고 어지러워지는 이치를 같이 끌어낸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의 이 설명은 바람이 산에 있는 사물을 떨어뜨리며 여자가 남자를 유혹한다고 했으니, 고괘는 사물을 좀먹고 흔들어 어지럽혀서 일을 만들게 되니, 허물어지고 혼란해진 것은 다스려야 하고, 다스리고 나면 다시 회복되어 아주 잘 형통 하게 된다는 것이 치고원형(治蠱元亨)이라는 말이다.
풀의 소재로 만든 그릇을 오래 쓰지 않으면 벌레가 생기는 것을 고(蠱)라고 설명하니 이를 사람에게 대입하면 오래 즐기는데 빠져있으면 병이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이 오랫동안 편안하고 일이 없으면 폐단이 생겨나는 것이 같은 맥락의 고(蠱)라고 송(宋)나라 소식(蘇軾)이 주를 달았다. 역시 송나라 때의 주희(朱熹)는 스스로 묻기를, “고(蠱)가 파괴하고 어지럽힌다는 형상이면 비록 극도로 혼란하여서 반드시 다스린다고 해도, 어떻게 크게 형통 할 수가 있겠는가(蠱是壞亂之象 雖亂極必治, 如何便會元亨?” 이에 스스로 대답하기를, “혼란의 극에는 반드시 다스려지니, 하늘의 순환의 도는 저절로 이와 같이 된다(亂極必治, 天道循環自是如此).” 역사의 예를 들어 이를 설명했다, 오호십륙국(五胡十六國) 시대에 그들이 말하는 소위 오랑캐 다섯 종족인 흉노(匈奴), 갈(羯), 선비(鮮卑), 저(氐), 강(羌)이 수(隋)나라 때까지 극에 달하도록 어지럽혔을 때 당 태종(唐太宗)이 나왔고, 오대시대(五代時代)의 소위 오계혹(五季酷)과 같은 혹독한 고난의 다섯 외세의 압박이었던 후량(後粱), 후진(後晋), 후한(後漢), 후주(後周)의 혼란 뒤에는 송(宋)나라 태조(太祖 趙匡胤)가 나왔다는 논리를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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