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산 바라보며/ 望嶽
“垈宗夫如何 대종은 그 어떤 산인가?/ 齊魯靑未了 제와 노의 푸름 끝없네./ 造化鍾神秀 자연의 신기 다 모이고/ 陰陽割昏曉 남북에 또 명암을 가르네./ 盪胸生曾雲 층층 구름 가슴 씻으매/ 決眥入歸鳥 돌아가는 새 눈에 드네./ 會當凌絶頂 다 휘어잡는 저 절정엔/ 一覽衆山小 모든 산들 작게 보이리.” 대종(垈宗)은 동악(東嶽)이라고 도 하는 중국의 오악(五嶽) 중에서도 으뜸 산이니 가장 높아 서가 아니라 역대의 많은 황제들이 이 태산(泰山)에서 하늘에 제사[封禪]를 지냈기 때문이다. 중국 시(詩)에 지금까지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두보(杜甫/ 712-770)는 낙양(洛陽)이나 그 하남성(何南省) 사람으로 난리에 사천성(四川省) 성도(成都)에서 지낸 적이 있는데, 과거 시험에는 낙방을 했으나 시(詩)의 노력으로 후대에 시성(詩聖)이란 별명을 얻었으며, 우리 조선 선비들에게도 가장 많이 읽히고 공부했던 시(詩)가 그의 것이었다. 그가 지금의 산동성 제남(齊南)에도 서너 해를 지냈는데 그 즈음 곧 736년 24살 때, 두보는 태산을 올려다보면서 이 5언율시(五言律詩)를 지었고, 지금까지도 많이 들 애송한다.
태산은 과연 어떤 산인가? 그 산 북쪽은 고대 제(齊)나라 땅이었고, 남쪽은 공자가 살았던 노(魯)나라 땅이었으니 그 가운데 있다. 조화(造化)는 신(神)이기도 하고 신비한 대자연이라고 도 할 수 있으니 그 신기한 아름다움이 다 모여 있는 듯, 여기 종(鍾)자는 모인다는 뜻이니까. 그 신비함이 음양을 갈라 놓고 저녁과 새벽을 가르듯 북쪽이 어둑하면 남쪽은 밝아서 혼효(昏曉)를 가르는 경계가 된다고 생각했다. 이 첫 4구는 객관적인 현상의 묘사이다. 그 하반부 4구는 그의 감회를 표출한 핵심이다. 태산을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가슴이 탁 트였으니 층층이 이는 구름[曾雲]에, 보금자리로 돌아가는 새들이 눈에 확 들어왔다. 세상의 이치와 조화가 인식되는 새로운 순간, 세상을 압도하는 저 꼭대기에 올라가면 그 아래로 뭇 산들은 다 조그맣게 보이리라. 이 시문으로 보면 그가 정상에 올라가지는 않았다, 아니 올라가도 그는 이미 그 상상을 충분히 감격하고 있었으니까.
나는 두 번이나 태산의 정상을 오르내렸는데, 아마도 1350년 전에는 오르기도 쉽지 않았겠지만. 중국의 오악(五嶽)도 내가 다 가보았는데 오히려 화산(華山)이 훨씬 더 웅장했음에도 태산을 천하제일산(天下第一山)으로 치는 것은 봉선(封禪)의 제례를 올리는 으뜸 산이었기에, 두보도 신비한 조화에 맞췄고, 공자(孔子)도 태산에 올라가 보고는 세상 모든 산들은 다 작게 보였다고 맹자(孟子 盡心上)가 말했으니, 두보도 여기 그 견해를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가! 우리 백두산(白頭山)에 비하면 작은 언덕이라고 해도 될 만한 태산인데, 역대의 황제들도, 두보도, 성스런 대종산(垈宗山)으로 보았기에 그렇게 감격할 밖에. 마치 내가 백두산에 올랐을 때의 감격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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