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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글

가을의 극치

가을의 극치/ 寒露之歡喜


가을 한층 깊어져 이른 아침에는 찬 이슬 많이 도 맺히고, 공기 더욱 건조하며 서늘해 차가운 감촉이 든다. 국화 향기 그윽해지고 산에 오르기 좋은 쾌청한 날씨다. 기러기 남쪽으로 날아가면 단풍 곱게 물들기 시작하는 아름다운 계절. 춥기 전 가을 추수 거둬들여야 했으니 부지깽이까지 덤벙이는 수확 철이다. 지금이야 농촌도 수지타산(收支打算) 계산이 빨라 밀과 보리 거의 안 심지만 북쪽은 한로에, 남쪽의 2모작 논에는 상강에 보리를 심는다. 그 타이밍도 중요했거든, 너무 일찍 갈면 웃 자라서 안 좋고 늦으면 냉해에 수확이 떨어지고 이듬해 모내기까지 늦어지게 되는 까닭이다. 그야말로 눈 코 뜰 새 있었겠는가.
옛 사람들은 자연의 변화를 책력으로 묶어서 분석했다. 1년을 12달로 나누고, 그것을 다시 한 달에 두 번씩 24절기로 나누었으며, 또 24기(氣)를 각기 5일씩 3후(候)로 나누니 72후가 되었다. 그로서 매월, 매 절기, 매 후의 현상에 따른 월령을 설명한다. 그로서 한로의 1후엔 기러기가 손님으로 날아오고[鴻雁來賓], 2후엔 참새가 바다에 들어가 조개가 된다[雀入大水為蛤]고, 3후에는 국화가 노랗게 핀다[菊有黃華]는 것이다. 여기 참새가 바다에 들어가 조개가 된다는 건 고대인들의 개념이니 나는 것들은 너무 추워서 땅과 물속에 모두 잠긴다고 본 것이었다. 노란 국화는 음기(陰氣)가 왕성할 때 그것만이 토(土)의 극치로 노랗게 아름답기 때문이다.
황국(黃菊)이 아름다운 음기의 극치(極致)라면 서성(西成)은 풍요로운 수확의 극치이다. 또한 한로의 가을은 안개 그윽한 물 위에서 고기 배에 아물 거리는 불빛이 동양화의 신비를 자아내는 시와 그림의 운치가 고조된다. 건각(健脚)은 높은 하늘로 오르고자 등고(登高)하니 단풍(丹楓) 황홀경에 국화주(菊花酒)로 시축(詩軸)이 길어진다. 지역 따라 특산물은 달라도 남쪽에선 동백(冬柏/ camellia) 열매를 한로에 거둔다. 자수정(紫水晶)의 진주 알이 가득 박힌 신선의 과일 석류(pomegranate)가 제철이다. 흔히 만주(滿洲)라는 중국 동북(東北) 지역에는 요새 노화방지의 앤티옥시던트(antioxidant) 듬뿍 함유했다는 홍과(紅果), 영어로는 호똔(hawthorn), 우리는 한방에서 익숙한 산사자(山査子), 그 산사(山査)도 한로가 수확 철이다. 꽃 사과 알만하고 너무 시어서 우리는 별로라도, 설탕 같은 닷 맛을 듬뿍 발라 꼬치에 꿰서 베이징[北京] 거리에서도 흔히 사 먹지 않던가. 추수동장(秋收冬藏)이라 가을 추수에 정신 없지만 온갖 겨울을 위한 저장까지, 깻잎도 호박, 가지, 무말랭이며 가을볕이 식기 전에 겨울 밑반찬을 말려서 갈무리해야 하지 않았나. 할아버지가 낚시한 생선의 염장(鹽藏)이나 소금에 쪄서 말리기까지, 몸져눕지 만 않았으면 연로한 할머니도 날마다 마당에서 분주할 수밖에 없다, 가을의 한가운데 토막 한로(寒露) 절후는 수확의 환희가 절정인 까닭이다. 한줌의 추양(秋陽)도 너무 값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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