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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글

楡桑華年 / 인생의 태반

楡桑華年/ 인생의 태반

아직 찬란한 석양의 유상화년(楡桑華年). 그 화년은 소년 소녀의 꽃다운 청춘을 일컫고 아울러 61세의 화갑(花甲)도 다시 꽃다운 화년(華年)이라 했다. 젊음은 해 돋는 동쪽 바다에 상상의 신성한 나무인 부상(扶桑)에 비겼고, 노년은 뉘엿뉘엿 저녁노을 비치는 서녘 느릅나무와 뽕나무에 은유(隱喩)를 걸었으니 노령의 황혼을 아름답게 비유한 것이 아니 랴. 바야흐로 100세 시대엔 인생 후반(後半)이 60부터 100세, 그 좋은 반생(半生)을 얘기한다. 예전엔 인생 한 주기(週期)인 60갑자를 다 살았다고 화갑지년(華甲之年)을 축하해주었으나 60세가 지금은 명실상부 청춘인데? 70에 고희(古稀)잔치를 한다. 아득히 천년 하고도 300년 전인 당(唐)나라 때야 두보(杜甫)가 곡강이수(曲江二首)에 “술 빚은 가는 데마다 늘 있고, 인생 70은 예부터 드물었다오(酒債尋常行處有, 人生七十古来稀),” 안타까워했던 데서 70고희가 생겼을 뿐이니까. 오히려 이젠 80에나 축하 잔치 하러 드니 그조차 인생 후반의 중년이라니.

노약자는 예전에 임금 앞에서도 지팡이 짚도록 허락된 80세가 장조지년(杖朝之年)이라 그만큼 희귀했거든. 80, 90대를 태배지년(鮐背之年)이라 노인의 살 가죽이 복어[鮐] 껍질처럼 점이 있고 거칠다 했으나 지금이야 영양도 피부 관리도 좋아 여전히 곱고, 보톡스 맞고 정형도 하는 걸. 8, 90의 노령을 예기(禮記 曲禮)에는 모(耄), 모질(耄耋)로 늙어 빠진 인상을 주었지만 팔팔 싱싱한 8, 90이 지금은 종로 3가에 즐비하다니까. 일백 백(百)자에서 위의 한 일(一)자를 빼고 흰 백(白)자로 만들어 99세를 백수(白壽)로 재밌게 부르다가 역시 예기 곡례에 언급된 대로 100세는 기이(期頤)라 해서 기이지년(期颐之年)이라 불렀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1만 명, 2만의 100세 이상이 늘고 있다 지 않나. 인생 후반의 느릅나무 뽕나무에도 화광만장(霞光萬丈)하 도다!

우리 인생 하반(下半)의 어느 단계인가? 화년, 고희, 장조지년, 태배지년, 기이지년. 내 비록 백수(白首) 호수(皓首)에 황발(黄髮)이 되어갈지라도, 옛날 말로 눈썹과 수염이 하얗더라도 수미(鬚眉)로 사는 유상화년이 왜 안 될 건가. 예전에 여자들이 쓰던 두건과 머리 장식이 건괵(巾帼)이라 여장부를 건괵장부(巾幗丈夫)라고도 했으니 여자도 수염과 흰 눈썹[鬚眉)의 남자 못지않은 활달한 경우를 두고 그렇게 불렀다. 건괵이든 수미든 왕성한 후 반생을 기쁘게 구가해야 하지 않겠는가, 유상화년(楡桑華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