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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글

Dust to Dust / 성회일

Dust to Dust/ 성회일

오늘이 성회일(聖灰日), 또는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로 오랜 서방 기독교회의 절기이다. 이는 사순절(四旬節)이 시작되는 첫째 날이며, 부활절까지 일요일 뺀 40일 동안을 기리는 기간으로 삼는다. 사순절(Lent)은 글자 그대로 40일 절기라는 말이니 부활절이 되기 전의 이 기간 동안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면서 욕망을 삼가고 경건한 절제의 생활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근 2천 년에 달하는 전통이다. 로마 가톨릭이 대다수인 라틴 아메리카는 해마다 사육제(謝肉祭)라고 번역하는 카니발(Carnival)이 성대하게 열리는데, 그 역시 사순절이 되기 직전에 신 나게 놀고먹고 마시다가 회개하고 금욕 하는 사순절을 지키게 되는 데서 혼합된 축제가 되었다. 고기를 사양한다는 말로 사순절에는 욕망을 줄이기 위해 육식(肉食)을 피하는 데서 나온 말이다. 고기를 안 먹는 때가 오기 직전에 실컷 먹고 즐긴다는 말이 된다. 대개 성회일 전의 금요일부터 닷새 동안 흥청 대는 대단한 축제를 즐기다가 성회일 하루 전날인 화요일에는 카니발도 끝내고 회개를 하며 삼가는 사순절로 들어간다는 말이다.

그러면 재(灰)는 무슨 관계인가?) 사순절은 부활절을 준비하는 기간에 회개하는 절기이므로 재는 회개의 표식을 상징하는 까닭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40일 금식 기도를 본받아 금식(fasting)을 하였으니 옛날 로마 가톨릭 전통에서 날이 밝으면 금식하고 어두워지는 저녁까지 금식했고, 후에는 지역에 따라 변천하여 금요일에만 금식하고, 금요일 낮이나 혹은 한 끼를 금식하는 경우도 있었다. 특별히 천주교회 오랜 관습으로 사순절 기간에는 육식을 피하고 생선으로 단백질을 보충하는데, 미국에서도 가톨릭이 많은 지역에서는 생선 장사의 대목이 되기도 한다. 적어도 금요일에는 생선을 먹어서 생선과 금요일(Fish and Friday)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였다. 욕망을 자제하고 자신을 부인하는(self-denial) 실천을 권장하니 좋아하는 술을 이때 참든지 금연(禁煙)을 하는 사람, 커피를 너무 많이 마시거나, 초콜릿을 너무 사랑하면 이때 만은 피하면서 금욕을 자제하기도 한다. 사순절의 시작인 성회일에는 성당이나 교회에 모여 재로 이마에 성호(聖號)를 그으며 “그대는 재/ 먼지/ 흙에서 왔으니 재/ 먼지/ 흙으로 돌아감을 기억하시오!”라고 성직자가 말해준다. 곧 인간은 마침내 그 본래의 먼지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재확인하면서, 나는 결국 아무 것도 아니니, 먼지에서 왔고, 먼지로 돌아감을 겸허히 수용하는 경건의 실천인 것이다. 인간은 모든 만물과 한 가지로 다 먼지로부터, 우리가 사는 지구조차도 모두 우주의 먼지(stardust)에서 오지 않은 게 있는가?

마지막 무덤에 묻히는 하관식(下棺式)에 한 줌의 흙을 뿌리며, “먼지에서 왔으니 먼지로 돌아 갈 지라!”고 한다. 재에서 왔으니 재로,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먼지에서 왔으니 먼지로 돌아간다(Ash to ash, earth to earth, dust to dust)!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엄연한 이 인간성(humanness)을 철저히 회상하는 때가 성회일이요, 사순절이다. 그래서 이때는 회개하고, 금식하며, 겸허히 절제하며 선행에 손을 뻗는 것이다. 무엇을 뉘우쳐야 하는가,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도 절제할 수가 있겠는가? 건강이 허락한다면 혹 한 끼라도 금식하면서 내 욕망을 자제해볼 수가 있을 것이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Remember that you are dust, and to dust you shall return/ 창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