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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글

德治主義 / 덕치주의

德治主義/ 덕 있는 사람

덕(德)은 공부로만 얻을 수가 없고, 유산으로도 물려받기가 어려우며 많은 돈으로 살 수도 없다. 덕을 소유할 수는 있으나 거래될 수 있는 상품[commodity]과는 거리가 멀다. 덕(德)은 예부터 득(得)과 통한다면서 몸에 또는 인격에 체득(體得)된다고 했다. 그러니까 만질 수 있는 게 아니라 인품에 녹아 날 수 있는 액체로 비유할 수 있지만 받아 담을 수 있는 물체는 더욱 아니다. 몸과 인격에 젖어 들 수 있는 물감과 같으나 무슨 색깔인지는 이름 못 짓는다. 그래도 그 인격적 덕의 색채는 굉장히 강하여서 사람들이 그 컬러를 인식할 수는 있다. 그것이 참으로 아름다워서 걸작 품처럼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지만 계산할 수는 없다. 공자 같은 사람의 공덕(孔德)은 수 천 년의 역사도 있으니까.

그래서 동양인의 인격에는 반드시 덕(德)이 있어야 했다. 덕망(德望)이 있는 사람이 존경을 받고, 덕이 얕은 사람을 가볍게 본다. 군자(君子)는 덕이 있는 사람이라 스스로 덕 있는 인품을 얻으려 노력한다. 그래서 덕(德)자가 들어가는 우리의 이름이 수없이 많으니 내 주위에도 그렇지 않던가. 덕 있는 동네라는 덕동(德洞)이 곳곳에 있고, 덕 있는 사람이 많은 마을이라 덕다리(德多里), 큰 덕이 있는 대인(大人)의 동네 대덕리(大德里)도, 온갖 덕이 많은 만덕(萬德)이라는 지명도 많고, 덕이 풍성한 덕풍(德豊)이 있는가 하면, 덕이 축적된 덕적도(德積島)라는 섬이며, 덕이 더한 가덕도(加德島), 덕이 가득한 영덕(盈德)과 덕이 산처럼 높은 곳 덕산(德山)도 있다. 덕이야 말로 모두가 원하는 바 인격적인 구비 조건이었으니 우리 이름에 담은 이 덕(德)자의 염원인 것이다.

장엄하지 못한 행동은 몸에 밴 습성이 편협하고 치우쳐서 그 기질이 드러나거나 혹 내면에 인품을 제대로 갖췄더라도 행동이 근엄하지 못하면 사람들이 존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아서 경솔히 대할 수가 있다. 권력이 있어도 덕이 없고 인품에 장중함이 없으면 사람들이 곧 알아보고 공경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닌가. 논어(論語 陽貨篇)에 공자가 말했다. “오직 여자와 소인은 기르기가 어려우니, 가까이 하면 공손하지 않고 멀리하면 원망한다(唯女子與小人 爲難養也 近之則不孫 遠之則怨).” 여기 소인은 노복(奴僕)과 하인이라고 송(宋)나라 때 주자(朱子)가 해석했다. 그러므로 군자는 신첩(臣妾)에게 장중하게 대하고(莊以涖之) 사랑으로 길러주면(慈以畜之) 그 두 가지 병폐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자가 논어 위령편(論語 衛靈公)에서 밝혔다. “(권력의) 자리에 올라서도 어짊으로 지키지 못하면, (권력을) 얻었더라도 잃고 만다(知及之 仁不能守之, 雖得之 必失之).” “덕으로 인도하고 예로 가지런히 조화하면 (백성들에게) 염치(廉恥)가 있게 되고 또 선(善)에 이르게 된다(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고 논어(論語 爲政篇)에 정치 원칙을 제안했다. 형벌보다 덕과 예로서 백성을 인도하라는 뜻이 아닌가. 세상은 온통 이득(利得)에 만 팔려서 덕(德)이 시들어 안타까운데, 더구나 지도자에게는 더욱 절실한데 말이다. 이제 이 나라를 이끌 나라의 큰 종을 뽑는 대선(大選)이다. 덕이 있는 사람이어야 국민이 존경하고 진심으로 협력하지 않겠는가. 얄팍한 이익의 재주 있는 자가 아니라 속이지 않고 진실한 덕(德)이 있는 지도자가 이 나라에 지금 절실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