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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글

발간치활 / 노인의 통쾌

髮鬜齒豁/ 노인의 통쾌

늙어서도 통쾌한 일을 잘 표현한 다산(茶山 丁若鏞)의 글이 재미있어 웃었다. 발간(髮鬜)은 독간(禿鬜)과 같이 대머리를 말하고, 치활(齒豁)은 이가 다 빠지고 나서 시원한 잇몸을 두고 하는 말이다. 늙어 머리칼이 싹 없어진 대머리가 노인의 첫째 통쾌함이요, 둘째가 이빨 몽땅 빠져버린 상태란 다. 정말인가? 그 경지 돼보기 전에야 말하기가 어렵지, 그런 쾌감도 실상 지금에는 구가(謳歌)하기도 쉽지 않은 노릇이니 상상할 밖에는.

한시(漢詩)로 지은 그의 ‘송파수작(松坡酬酢)’ 시리즈 중 한 수(首). 치통이 싹 없어졌을 때의 그 통쾌함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니! 통증이야 다 싫지만 옛 사람들은 치통 만한 아픔이 없다고 들 하였고, 내 어렸을 때 노인들 종종 하던 말이 생각난다. 1960년대 까지만 해도 이 앓이 하는 이들이 많았거든. 다산도 예외 아니었으리니 이 글에서 느낄 수가 있다. 얼마나 치통이 괴로웠으면, 하나 씩 다 빠질 때까지 시달렸음을 짐작해 보면, 마지막 남은 이빨까지 다 빠지고 났을 때의 그 통쾌함이 노인의 신 나는 두 번째 쾌감이라고! 대머리가 남자의 가장 수치스러움처럼 여겨 머리칼을 심기도 하며 기막히게 가발을 붙여서 제 머리 못지않게 만드는 기술도 지금은 개발되지 않았나. 예전 대머리는 미관상(美觀上) 문제가 아니라 상투 틀어 탕건에 갓을 써야 했으니 머리칼 없는 상투 관리가 어려웠을 것이고 조금 남은 머리칼이 더욱 성가셨던 가보다. 그래서 빗 질도, 상투 걱정도 없게 되는 대머리가 시원하여 그렇게 편하고 통쾌할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늙은이 유쾌한 일은/ 민둥 머리 유독 좋아라(老人一快事/ 髮鬜良獨喜). 평생 풍습에 얽매이던 사람/ 이제야 쾌활한 선비 되었다 오(平生拘曲人/ 乃今爲快士).”

“늙은이 유쾌한 일은/ 이빨 없는 시원함이 그 다음(老人一快事 齒豁抑其次)/ 절반만 빠지면 정말 아파/ 아주 없어야 편 타오(半落誠可苦/ 全空乃得意). 움직여 흔들릴 땐/ 찌르는 듯 시고 아파(方其動搖時/ 酸痛劇芒刺), 침 뜸도 효험 없고/ 쑤시다가 눈물 나기도(鍼灸意無靈/ 鑽鑿時出淚). 이젠 온 걱정 없어/ 밤새도록 편히 자네(如今百不憂/ 穩帖終宵睡). 가시와 뼈만 빼면/ 생선 고기 꺼릴 것 없어(但去鯁與骨/ 魚肉無攸忌). 잘게 한 것만이 아니라 /큰 고깃덩이도 삼킬 수가(不唯呑細聶/ 兼能吸大胾). 위아래 잇몸 오래 굳어서/ 자못 고깃덩이 부드럽게 끊을 수도(兩齶久已堅/ 頗能截柔膩). 이빨 없어서/ 좋아하는 걸 못 먹진 않네(不以無齒故/ 悄然絶所嗜). 위아래 턱 왕창 찧느라/ 씹는 모습 부끄럽지만(山雷乃兩動/ 嗑嗑差可愧). 이젠 사람의 병 이름/ 404 가지가 덜 되니(自今人病名/ 不滿四百四), 신 나네! 의학 책에서/ 치통이란 말은 빼버려야/ 快哉醫書中/ 句去齒痛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