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스탄불!/ Collide & Complexity
공항에서 곧 바로 백 리를 오니 소피아 성당, 긴 비행도 잊은 채 푸르름이 서울보다 약간 더한 듯 멋진 봄이 금상첨화로다. 아시아 유럽 두 대륙이 만나며, 그리스도교 이슬람이 충돌하고, 동양과 서양이 혼합된 1천 5백만 인구의 이스탄불. 대한민국 영토의 8배인 터키 서북 쪽 흑해와 지중해의 통로 보스포러스 해협(Bosphorus Straits) 양안에 걸친 국제 도시는 유럽 주와 아시아 주를 끼고 있고, 기독교를 로마 제국의 국교로 선포한 콘스탄틴(Constantius) 황제가 여기를 기독교의 중심으로 잡은 터전이다. 아직도 이스탄불 여행의 최고 하이라이트인 하기아 소피아(Hagia Sophia) 돔 성당이 천 년의 영광을 빛냈으나 15세기 오토만 제국의 정복으로 모스크로 바뀌었으니 대단한 종교적 충돌이 아닌가. 동북아시아의 돌궐(突厥) 제국의 서돌궐(西突厥)이 서쪽으로 뻗어서 중앙아시아와 중동을 거쳐 아나톨리아(Anatolia) 반도에서 튀르크(Turk), 터키(Turkey)가 되었으니 일찌감치 동양이 서양에 자리를 잡은 땅이 되었고, 거기 이미 그리스 문명이 뻗쳐있었으며 뒤에 로마 제국이 지배하여 동(東) 로마, 비잔틴 제국으로 혼합되었으니 세계의 강력한 중심축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이었다.
콘스탄티노플은 AD 330년 콘스탄티누스 I세 황제가 자기 이름으로 명명하였으니 로마 제국의 새 수도였다. 처음에는 이 동쪽 절반의 로마 제국도 서쪽 절반의 로마와 함께 콘스탄누스 1세가 다스렸고, 이름은 그리스 말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살아서 거기 있던 비잔티움(the City of Byzantium)에 관계 하여 동쪽 절반을 비잔틴 제국(Byzantine Empire)이라 부른다. 그리스인들이 만든 비잔틴 시는 지금의 이스탄불로 아시아 대륙과 유럽 대륙을 가르는 좁은 해협 보스포러스(Bosporus) 서쪽으로 동서의 교통 요지에서 흑해와 지중해를 그 해협으로 연결함으로 거기 무역의 큰 이득을 누리게 되었다. 이스탄불(Istanbul)은 1923년 터키 공화국이 시작되면서 부터의 이름이다. 비잔티움은 고대의 그리스인들이 세운 도시였고, 서기 329년 콘스탄틴 대제(Contantin the Great)가 로마 제국의 수도를 로마에서 비잔티움으로 옮기면서 자신의 이름을 기리기 위해 콘스탄틴노플(Constantinople)이라고 불렀다. 콘스탄티노플은 1천 년이나 내려오면서 이 도시의 호칭이었고, 1453년 오토만(Ottoman Sultan Mehmed the Conqueror)이 정복한 뒤에도 여전히 같은 이름의 콘스탄티노플로 서방 세계는 호칭 하였다. 1923년에 터키 공화국(the Republic of Turkey)이 건국 되면서 이스탄불이라 불렀다.
영어의 비잔틴 복합성(Byzantine Complexity)이란 표현이 있는데, 이는 여기 이스탄불의 2천 년의 긴 역사와 동서양의 문화며 종교의 상충(相衝)과 복합을 함축하는 말이 아닌가. 너무 지나치고 불필요하게 복잡한 현상을 두고 하는 표현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복합 현상을 의미하여 이해할 가치가 없을 정도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그토록 역사와 문화와 종교와 정치가 뒤얽힌 이스탄불이 그토록 복합적이란 말도 된다. 동서양과 온 세상이 아우르는 이스탄불에서 며칠 나도 첨벙거려볼 작정이다, 헷갈리지는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