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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gabond Senility / 안탈리아로 가면서

Vagabond Senility/ 안탈리아로 가면서

지중해 남쪽 연안 안탈리아(Antalya)는 사도행전 14장에 언급된 앗달리아(Attalia)이다. 1차 선교 여행에서 바울(St. Paul)이 배를 타고 시리아 안디옥(Syrian Antioh)으로 돌아갔던 2천 년 전 번화한 항구였으니, 당시 로마 세계의 큰 도시 그 안디옥과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쪽으로, 에게 해(海) 쪽의 에베소와 이스탄불로, 또 아테네와 로마까지도 아니었겠는가, 그리로 통하여 오가는 요충지에 사도 바울도 갔으니 나도 함 바람이라도 쐴까? 거기서 지중해 연안을 따라 서쪽으로 에게 해(the Aegean See)로 돌아서 옛 에베소와 서머나를 지나 최근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긴 현수교(懸垂橋)를 터키에 건설한 차낙칼레(Canakkale)로, 그리고 이스탄불로 돌아올 생각이었다. 자유는 즐겁지만 밤까지 이용할 만용에 밤 버스로 터키를 종단(縱斷)하기로 방향을 잡았다. 쉬며 자는 동안 700km는 데려다 줄 테니까. 비행기나 버스나 비슷한 비용이라도 육로를 밟아 느끼려는 편을 선택했다.

방랑자(Vagabond)의 광기(狂氣)가 도지다니! 아이들이 알면 또 웃겠지? 이스탄불 메트로(Metro)를 이용해 시외버스 터미널로 가서 오버나잇 큰 버스(Overnight Bus)에 올랐다, 2천 리를 밤새 달리려고. 43년 전 그 망령(妄靈)이 어디 숨었다 되돌아왔나. 그레이하우드(Greyhound) 버스로 주야에 미 대륙을 더듬으며 첫 30일 중의 열 나흘 밤을 차 안에서 자고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으며 방랑하던 그 젊은 날에 어찌 견주랴. 시카고에서 캔터키 링컨의 오두막집에 들리고, 마틴 루터 킹 주니어를 보고 싶어 망가머리 앨러배마(Montgomery, AL)와 조지아 애틀랜타, 애팔라치안 산맥을 넘어 토마스 제퍼슨을 만나러 만티첼로(Monticello), 조지 워싱턴을 보러 마운트 버넌(Mt. Vernon), 워싱턴, DC까지. 다시 Kansas City를 거쳐 텍사스 댈러스, 아 플로리다 키웨스트 끝의 섬에 있다는 헤밍웨이의 별장까지, 또 사우드 다코타의 러쉬모아(Rushmore Statues)와 캘리포니아까지 종횡무진(縱橫無盡), 게다가 이듬해 또 한 번마저 도합 두 달을 겁도 없이 헤매던 정상을 벗어났던 그런 상태가 말이나 되겠나?

손짓발짓 까지 다 동원해서 백인 흑인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묻고 말을 걸다 보면, 어김없이 때가 되어 맥도널드 같은 휴게소에 차가 서지, 특가 99전 하던 갑절 크기의 쇠고기 듬뿍 들었던 와퍼 빅맥 햄버거와 프렌치 프라이 코카콜라로 요기를 했고, 8시간이면 어김없이 법에 따라 운전사는 바뀌지만, 어떤 때는 밤이면 가다가 승객들도 다 내리고 나서 운전사는 나만 싣고 홀로 승객이 되어 꼬부려 눕고 밤을 달리다 보면 초승달이 보름달로 변하고, 아이오와 옥수수 밭은 콜로라도의 달 밟은 밤으로 변하였지, 나도 모르게 혼자 앉아 넓은 세상에서 그렇게 실성하게 눈물을 흘리게 되던데? 끝없는 캔사스의 밀 밭과 오클라호마 텍사스의 넓은 목야지엔 내게 낯선 건초 더미가 들판에 우리네 거름더미마냥 굴러있던 것이 무엇이냐고 옆 사람에 물으며, 어찌하여 신은 이 엄청난 신대륙의 귀퉁이 만한 땅 조각도 우리에게는 보태주지 않았는가 하늘에 소리쳤지만, 밭두렁 논두렁 한치도 놀릴 수 없어 호미로 쪼아 콩 심던 우리 모습만 어른 거렸을 뿐이었다. 모자라게 편친 플로리다의 감귤 밭을 제주도에다 비길 수가 있어야지. 망태 매고 꼴 베던 내가 들판에 풀어놓아 저절로 자라는 텍사스의 랜처(Ranchers)들을 어찌 우리가 당하느냐고? 내가 처음 상공에서 캐나다와 미국 대륙의 바둑판처럼 그려 놓은 들판을 내려다 볼 때 운동장에서 흙 먼지 뒤집어쓰고 땅 뺏기 하면서 피 터지게 싸우던 어린 시절이 어찌 생각나지 않을 수가 있었으리요! 세상은 넓고 아직 가야 할 데는 너무나 많지 않던가, 세월이 한(恨)이지만. 여기 짧은 나들이나 터키의 종단(縱斷) 여행기를 쓰려니 노망(老妄)이 발동하려는 지 삼천포로 감회가 먼저 빠져버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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