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인의글

St. Paul's Pamphilya / 선교 여정을 지나며

St. Paul's Pamphilya/ 선교 여정을 지나며

바울 일행의 제1차 선교 여정은 지금의 시리아인 안디옥(Syrian Antich)에서 출발, 거기 실루기아(Seleucia) 항구로 나가서 사이프러스(Cyprus) 섬 살라미(Salamis)에 도착하였다. 우리 제주도의 절반 정도인 1천 평방미터의 키프로스/ 구부로 섬은 지금 약 1백만 명이 산다는 데 그 18%가 터키 계이고 78%의 대다수가 그리스 계이지만 1974년 터키가 공격하고는 섬의 북동쪽 절반 가량을 점령하므로 섬에 흩어져 살던 터키 계가 그쪽으로 이주 했고, 지금까지도 거기 수도인 니코시아(Nikosia)까지 분리하여 북 키프로스 정부를 수립하였어도 UN에서는 단지 그리스 계의 서남 쪽 만을 사이프러스 공화국으로 인정한다. 거기가 대한민국 보다는 국민소득이 높은데 남북 분단은 아직도 같은 처지, 바울이 갔을 때야 나라도 아니고 로마의 관할 아래의 섬이었을 뿐이지만. 바울은 다시 거기 구부로 섬의 바보(Paphos)에서 배 편으로 지금의 터키 남쪽 발빌리아(Pamphylia) 지방으로 건너가서 버가(Perga)에서 전도하고 비시디아 안디옥(Pisidian Antioch)으로 올라갔다. 거기서 동쪽으로 이고니온과 루스드라 및 더베(Derbe)까지 갔다. 그리고는 오던 길을 되짚어 돌아오면서 전도 한 성도들을 격려하며 앗달리아(Antalya) 항구로 와서 배로 구브로를 거쳐 파송 받았던 시리아 안디옥으로 돌아왔으니 이때가 대략 AD 45년 경으로 추산한다.

내가 도착한 안탈리아 항구에서 키프로스 섬까지는 1천 리 정도이니 서울에서 부산 가는 거리 쯤으로 상상할 수 있겠다. 그리고 제 2차 선교 여행은 시리아 안디옥에서 출발, 이번에는 육로로 시리아 북쪽을 올라가 길리기아(Cilicia) 지방에서 그 지역 수도인 바울의 고향 다소(Tarsus)를 거쳐 1차 때에 마지막으로 갔던 더베를 반대 방향에서 재차 방문한 것이다. 거기서 1차 때에 전도 한 성도들을 찾아 격려하면서 루스드라(Lystra), 이고니온(Iconium), 터키 수도 앙카라의 남쪽에 있는 지금의 코니아(Konya)인 비시디아 안디옥(Antioch)을 거쳐서 서쪽으로 무시아(Mysia) 지방까지 갔는데, 거기서 그는 가까이 동북 쪽의 지금의 부르사(Brusa) 쪽 비두니아 지방으로 갈 계획을 세웠으나 에게 해를 건너 마게도냐(Macedonia)로 오라는 꿈의 계시로 도리어 반대인 서쪽의 드로아(Troas)까지 가서 배를 타고 유럽을 건너갔던 것이 가이사랴 빌립보였다. 그리고 제 3차 선교 여행은 1, 2차 때에 세운 교회들을 돌아보며 에베소에서 3년 동안이나 체류한 것이 53-55년 경이였을 것이다. 지금의 그리스로 건너가 2차 선교 여행 시에 갔던 고린도까지 다녀서 돌아올 때는 밀레도에서 에베소의 장로들을 청하여 만나기도 했다.

그러니까 나는 바울의 행로(journey)와 는 반대쪽에서 접근한 셈이니, 지금의 이스탄불은 드로아 동북 쪽이라 거기서 그가 가려 던 비두니아(Bithynia) 쪽으로 동진 하고는 남쪽을 틀어서 내려왔으니 바울의 여정과는 십자로 갈리는 길이었다. 그래서 내가 탄 버스는 좌측의 동쪽으로 바울과 관련된 갈라디아(Galatia), 이고니온(Iconium), 밤빌리아(Pamphylia) 지역을 두고 남으로 달려서 그가 지나간 남쪽 항구 앗달리아, 곧 지금의 안탈리아 쪽으로 들과 산을 보고 느끼며 초대 교회의 자취가 실감났다. 금년 수난 주간은 이렇게 터키에서 바울의 여정을 다시 복습하고, 사도 요한이 계시를 전한 아시아 7교회 지역을 또 공부하는 참 유익한 기회였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 듯 역사적 현장을 통한 학습의 가치 또한 여간 크지 않았다, 바울과 요한을 가까이서 바라보았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