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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글

遐觀博望 / 하늘 길 길라잡이

遐觀博望/ 하늘 길 길라잡이

하늘 길은 땅 길과 뭍 길처럼 공중에 길을 정하고 날아가는 비행기의 항로(航路), 바닷길을 수로(水路) 땅의 육로(陸路)처럼. 길라잡이는 길잡이, 앞에서 안내하는 향도(嚮導)나 기기(器機)를 일컫는 요샛말로 옛말인 길+나장(羅將)이다. 조선 시대 고을 수령이 외출할 때면 옥색 철릭을 입은 사령(司令)이 쩔렁대는 방울을 달고 가면서 원님을 인도하던 구실아치 같은 안내자를 지칭한다. 자동차에 달고 다니며 흔히 사용하는 네비게이터 기기(器機)도 길라잡이며, 여행 안내자도. 비행기 좌석마다 스크린이 있어 영화를 보며 게임도 하고, 원하면 네비(navigator)처럼 세계 지도 위에 항로를 입체적으로 비행기의 날아가는 위치를 보여준다. 이스탄불에서 좌측에 흑해(Black Sea)를 끼고 수도 앙카라 상공에서 보니 터키는 흑해(黑海)와 거의 맞먹는 사이즈네? 첫 번 기내식을 먹고 났는데, 터키 동단(東端)과 아르메니아 수도 예레반(Yerevan) 사이로 노아의 방주가 내렸던 아라랏 산(Mt. Ararat)을 지나간다, 2시간도 못 돼 한라산에서 백두산 만큼의 3천 리 길을.

멀리 내다보고 널리 바라본다는 하관박망(遐觀博望)은 공자의 귀감(龜鑑)을 표현한 말로 늘 멀리 곧 천 년의 옛 일을 사모하였고, 멀리 나가 다른 광경 관람을 즐겨했다(孔子慕千古古事, 樂遐遠異觀)는 설명이다. 얼마나 멀리 내다보는가에 따라 우리의 시야(視野)의 너비가 드러나며, 멀리 내다보는 만큼 미래 운명의 기틀에 영향을 준다. 멀리 내다보는 생각이 없으면 가까운 근심이 있다(人無遠慮 必有近憂)고 또 논어에 말한 게 아닌가. 견문이 넓다는 옛 표현은 보고 들은 것이 많고 풍부하다는 박학다식(博學多識)과 상통하니, ‘자식이 귀엽거든 여행을 시키라.’고 지금 말하지 않던가? 눈앞의 관심사에만 골똘하다 보면 멀리 시야가 막혀서 큰 세상을 볼 수가 없고 사고의 범주가 좁아서 그 협착(狹窄)과 옹졸함에 얽매인다. 멀리 바라보는 자는 눈앞의 근심에 시달릴 새가 없으니까. 하다못해 공자는 자기가 살던 마을 곡부(曲阜)의 작은 산 위에라도 올라갔던 것 같고, 다시 자기 집에서 보이지 않는 먼 거리의 태산(泰山)까지도 원족(遠足)을 간 적이 있다. 동네 산에 올라 가본 사람의 시야는 고작 그 마을의 크기만을 볼 정도지만, 태산에 오르면 천하의 모든 산들이 다 작게 보일 뿐 세상의 모든 산을 간파하고 그 깊이를 터득할 수 있다는 것. 강물을 수없이 많이 보았더라도 큰 대양(大洋)을 본 사람의 크다는 개념이 월등 다르다는 게 공자의 설명이다. 이로 미루건대 공자도 여행을 퍽 좋아했던 것 같으니, 여행은 살아 움직이는 역사이며 사회와 경제와 문화의 광범위한 공부라 태산에 올라가고 바닷물을 보러 가는 것이다.

왼 편에 카스피 해(海)를 두고 이란의 테헤란 상공을 통하고, 비행기는 아라비아 해 북단으로 흘러드는 천고의 인더스(Indus) 하류 카라치를 지나간다. 아, 동서남북 한 달을 돌던 인도 지도에는 기차로 버스로 다녔던 도시들, 복잡한 뭄바이와 하이테크의 인도르(Indor), 힌두교 사원도 대단하던 마두라이, 동남 쪽으로 돌았던 첸나이가 입체적으로 나타나면서 비행기는 벌써 벵갈 만으로 든다. 말레이시아와 몇 번 갔던 수마트라의 메단(Medan) 사이의 말라카 해협을 통하여 싱가포르에 새벽 착륙이다. 공자가 상상도 못했을 지구를 굽어 돌며 유럽에서 동남아시아로 한밤을 날았으니, 그것도 공자의 수명을 넘긴 내 나이에, 좋은 세상 복된 우리가 아니랴. 9시간 두 번의 식사를 하며 싱가포르에서 갈아타고, 다시 5시간 타이완 해협과 동 중국해를 거쳐 우리의 제주도로, 마침내 인천. 길라잡이의 여정과 지리 공부에 빠져서 4만 리 하늘 길의 하룻밤도 금방. 기네스북(Guinness Book)엔 지금 가장 어린 나이에 전 세계의 모든 나라들을 다 탕방한 사람이 19세, 근 4배 더 살았지만 아직 100개 나라 못돼 하관박망(遐觀博望)이랄 순 없어도 호기심은 예외가 아니므로 절반이라도 가볼 참, 공자보다 야 훨씬 널리 다녔을지라도 그 깊이에서 멀리 관망(觀望)하기를. 해피 이스터(Happy Ea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