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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글

밥이 보약 / Living On Rice

밥이 보약 / Living On Rice

‘밥이 보약’이라 해서 우리가 예전에 밥을 많이 먹었을까? 서양 사람이 조선을 방문했던 20세기 초의 기록에 밥을 많이 먹는 조선 인에 놀라는 대목을 보게 된다. 실로 우리는 많은 양의 밥을 먹었다. 내 어렸을 때도 농군(農軍)의 밥 식기는 큰 놋 주발에 고봉(高峰)으로 수북이 담았고, 그 밥 술조차 정말 컸다. 많이 먹어야 힘을 쓰고 일도 잘한다고 해서 머슴을 들일 때 밥 많이 먹는 장정(壯丁)을 선택하는 기준의 하나가 되었다고 하지 않았던 가. 이익(李瀷/ 1681-1763)의 성호사설(星湖僿說)에 오키나와[硫球國] 사람들이 조선 풍속이 큰 사발의 밥을 쇠 숟가락으로 마구 퍼먹으니 가난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비웃었다는 대목이 있다. 조선 말에 외국인들이 일본인과 비교하여 조선 인은 갑절의 밥을 먹는다는 비교까지 했다니 까. 물론 우리가 체격이 크고 기운이 더하니 에너지가 더 필요했고, 먹을거리가 다양하지 못했던 옛날 단백질과 같은 영양가의 음식이 적어 탄수화물 중심의 밥을 많이 먹을 수밖에 없고, 그 심한 노동 량을 지탱하기 위한 칼로리 보충 때문이 아니었겠는가.

나의 세대가 영어를 처음 배울 때 ‘밥을 주식으로 한다.’는 문장을 가르치던 영어 선생들이 예문으로, “We live on rice."를 들면서 L과 R의 발음을 주의하라고 했다. 한글의 리을[ㄹ]로 는 혼란 되기 쉽기 때문이었다. 조크(joke) 예화로 미국에 처음 간 한국인 영어 교수가 ‘한국인의 주식(主食)이 무엇입니까?’라 는 질문에, “우리는 쌀을 주식(主食)으로 삽니다(We live on rice)."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그의 영어 발음이 ‘롸이스(rice)’의 아르[r] 발음이 그만 피 빨아 먹는 이(louse/ 라우스)의 복수 형인 ‘라이스(lice)’라고 엘[l] 발음을 하는 바람에 모두 놀라면서 이를 먹고 산다고? 당황했더라는 얘기. 혀를 꼬부려 굴리면서 아르[r] 발음하는 훈련이 잘못된 영어선생이었음을 상기하면서 밥이나 쌀이라는 ‘롸이스(rice)’를 처음부터 잘 분간하라고 강조했다. 밥이 보약 같은데, 혹 바르게 인식 못하고, rice를 lice로 잘못 말하듯 실수해서는 안 되지.

최근 오미크론 변이에 걸린 친구가 밥맛을 잃어 고행 했다면서 식사의 중요성을 재확인했다. 그건 제 때의 식사가 보약인 경우였지만, 여기 보약(補藥)은 밥이 다른 첩 약이나 음식물보다 영양분이 많거나 약효가 더 있는 식품이란 뜻은 아니다. 보약이라고 밥만 많이 먹다가는 오히려 건강을 헤쳐서 당뇨병을 유발하거나 비타민이나 영양소의 결핍으로 몸을 해친다. 밥이 보약이란 말은 식사를 제대로 잘하는 것이 보약처럼 고귀한 건강 지킴이가 될 수 있다는 표현일 뿐이다. 지금이야 밥으로만 주식(主食)을 삼지 않는 이들도 많으니 고기나 빵, 국수 등을 주식으로 식사하는 때도 있고, 반찬이나 부식(副食)이라고 여겼던 음식도 충분히 밥만큼 함께 많이 먹으므로 이젠 우리가 반드시 ‘밥으로 산다(Live On Rice)'고 만은 아니 할 테니까. 그리고 지금은 모두 영어도 원어민처럼 잘 해서 ’롸이스(rice)‘도 ’이[lice/ 라이스]‘라고 하는 이도 없을 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