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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글

The Child is Father of the Man / 아직도 아이처럼

The Child Is Father of the Man / 아직도 아이처럼

때때로 엉뚱한 어린 아이에게 놀라고, 또 영특한 어린이의 기지(機智)에도 어른들이 종종 경탄 한다. 겨울철 아랫목에서 돌이 채 안 되었을 때 딸에게 그림책을 보여주면서 야채를 가르치려는 데, 아이가 손가락으로 오이를 자꾸 만지면서 그걸 달라는 시늉을 하는 게 아닌가! 그림책 속의 오이를 어떻게 꺼내 줄 수가 있단 말인가? 계속 달라고 손가락으로 찌르다가는 애비가 그걸 꺼내주지 못하자 마구 울면서 달란다. 40년도 더 옛날엔 겨울 오이가 쉽지 않았을 때였으니 당혹 하였다. 책 속의 그림과 현실의 오이를 아이는 하나로 여겼던 지, 요새 개념인 가상현실(virtual reality)처럼 인식했을까?

1,600년 전 남북조 시대(南北朝時代)에 유의경(劉義慶/ 403-444)이 편찬한 세설신어(世說新語)에 나오는 양씨지자(楊氏之子)의 짧은 얘기도 기발하였다. 아버지가 외출 중에 아버지의 친구 공군평(孔君平)이란 이가 무심코 방문하여 9살의 양(楊)씨 아들이 맞이하였다. 아이는 부엌에 가서 과일을 상에 다 차려서 예의를 다했는데, 똑똑한 친구의 아들을 한번 떠볼 참인 지라 마침 거기 과일 중에는 양매(楊梅)가 있기에 공군평이 그 하나를 집어 들고서 9살 양(楊)씨 아이에게 보이면서 말했다, “이 양매(楊梅)는 너희 집 과일이구나!” 해석하자면 양매(楊梅)이니까 너희 집이 양(楊)씨 성이므로 양씨네 과일이라는 뜻이었다. 초여름에 익는다는 양매는 열대지방의 과일로 빨갛거나 자주 빛도 있는 딸기 비슷하나 더 크고 시면서 단 것인데, 소귀나무 열매인 이 양매(楊梅)는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에만 좀 있지만 많이 생산되지는 않는다. 아이가 얼른 대답을 했다, “아 삼촌 요, 저는 아직 까지 공작(孔雀)이 삼촌 네 집의 새라고 는 듣지 못했는데요?” 양매(楊梅)가 양(楊)씨네 과일이라면, 공작(孔雀)은 공(孔)씨네 새여야 한단 말입니까? 라는 암시가 아닌가!

그런 기지(機智)의 9살 짜리는 옛날부터 양씨네 영특한 아이로 소문이 우리 조선에도 널리 읽혔던 세설신화(世說新語)를 통해서 내려온다. 그 책이 남조(南朝)에서 출판된 지 50년 만인 1606년 명(明)나라 사신 주지번(朱之蕃)이 조선에 가져와서 전해졌다고 하니 퍽 일찍 우리도 그걸 많이 읽었던 것 같다. 지금도 종종 인용하는 사자성어 중에 세설신어에서 나온 말이 여럿인 걸 보면 말이다, 군계일학(群鷄一鶴), 접입가경(漸入佳境), 난형난제(難兄難弟) 같은 말이 그렇다.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 1770-1850)의 ‘내 가슴이 뛴다(My Heart Leaps Up)’에서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 했다. 지금 늙은 나는, 무지개를 보았을 때 가슴이 뜀박질 치던 그 어린이가 지금의 이 나의 아버지였다 네. 무지개를 보면 가슴이 뛰는 그 어린이, 늙어도 그 나는 가슴이 뛰어야 하느니! 그렇지 않다면 나는 죽은 게 아니랴. “My heart leaps up when I behold/ A rainbow in the sky/ So is it now I am a man/ So be it when I shall grow old,/ Or let me die!/ The Child is father of the Man/ And I could wish my days to be/ Bound each to each by natural piety. 어린이들의 기지(機智)를 다시 생각해본다, 지금 내 비록 늙었을지라도. 그 양씨의 아들과 같은 어린이는 계속 어른을 놀라게 할 것이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