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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글

Sleepless in Seoul / 잠 못드는 다정가

Sleepless in Seoul/ 잠 못 드는 다정가

배꽃에 달빛 환한 한밤중 梨花月白三更天
두견새 피를 토하는 절규 啼血聲聲怨杜鵑
다정이 병인 줄 알건마는 儘覺多情原是病
그 울음 날 못 자게 하네 不關人事不成眠

이 다정가(多情歌)는 이조년(梅雲堂 李兆年/ 1269-1343)이 남긴 7언 절구 한 수, 내 나름으로 번역해 본다. 두견이 잠 못 자게 하는 한밤중에 세태를 아랑곳하지 않는 자규(子規)를 빗대어 자신의 민감한 현실을 오히려 불여귀(不如歸)처럼 스스로 괴로워하는 안타까움이 아니 랴? 후대에 누군 가 이 시를 다정가(多情歌)라 이름 붙인 것은 진각다정(儘覺多情)이란 말에서 일 것이니, 정이 많은 사람, 너무 민감한 사람은 심리학적으로도 병에 가까울 수가 있다는 현대적 개념과도 일치한다. 가랑잎 바스락거림에도 감정이 떨릴 정도라면 섬세한 사람이 되리니, 이조년 역시 그토록 다정했는지도 모른다. 충숙왕(忠肅王)을 위하여 원(元)나라에 홀로 가서 부당함을 상소하여 바루었고, 다음 충혜왕(忠惠王/ 1315-1344 在位)을 위해서는 왕이라도 음탕함을 여러 번 충간(忠諫)했지만 젊은 왕이 받아들이지 않아 사직을 청한 바가 있었다.

매운당(梅雲堂)은 성주(星州) 이 씨로 오자등과(五子登科)의 고려 말 인재들인 벽년(百年), 천년(千年), 만년(萬年), 억년(億年), 조년(兆年)으로 막내였다. 그들의 아버지[李長庚]는 자신의 이름도 긴 세월[長庚]이라는 뜻이 있어서 아들들을 그렇게 억만, 조만(兆萬)으로 후손이 이어가기를 희망했던 것이 아니 랴. 그들에 관한 화제가 많았던 모양이니, 이조년이 바로 위의 형 이억년과 금덩이 두 개를 발견 했다네. 형제가 각기 하나씩 가졌는데 함께 배를 타고 가는 중에 조년이 자기 금덩이를 강물에 던져버리는 게 아닌가! “무슨 일이냐?” “형님, 금을 보던 순간에 형의 금덩이에 도 탐욕이 잠깐 일어나서 던져버렸습니다.” 이에 형 억년도 자기 금덩이를 내던져서 소위 ‘형제투금(兄第投金)’ 일화가 세상에 전해온다. 그래도 혹 그들이 버린 두 금덩이가 서울 강서구 두암 공원의 한 연못이란 전설이 있어서 더러는 아직도 욕망을 못 던져버린 이들 중에는 거길 지금도 기웃거릴지도 모른다. 이조년은 예문관 대제학(大提學)도 지냈고, 후에 공민왕은 그를 성산후(星山候)에 봉했으며 충혜왕 묘정에 배향된 인물이다. 개경 서울에서 잠 못 들어 했던 이조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