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後不孝/ 아들 못 낳으면
가정의 달로 우리가 생각해온 5월이 저무는 이때, 인간 사회의 기본 단위인 가정의 가치관 하나를 재고해본다. 변하는 가치 체계(value system)는 철학적 명제(命題)인데, 우리 전통 사회에서 오래 지녀온 아들 선호(選好) 사상은 그 빛이 바랬다. 부귀 다남(富貴多男)은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가장 큰 축복의 염원이었건 만.
조선의 군자는 다 읽어야 했던 맹자(孟子 離婁上)에 “불효에는 3가지가 있는데, 그 중의 후사(後嗣)를 잇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크다, 장가가지 아니하고 아들을 두지 못하면 선조의 제사를 끊어지게 하기 때문이다(不孝有三 無後爲大, 不娶無子 絶先祖祀).” 사내는 모름지기 맹자를 읽어야 한다고 외조(外祖)께서 어려서 부터 당부하시기에 일찍이 나도 그것을 열심히 읽었으니, 재미나는 그의 논변은 참 좋았다. 그래서 이 대목도 당연지사(當然之事)로 받아들였지만, 지금은 아예 딴 세상의 가치관이 아닌가? 그 누가 아직도 선조의 제사를 이어가기 위해서 장가를 가고, 또 반드시 아들을 꼭 낳으려고 하는가. 종친회에 열심인 70대의 노령 중에는 아들이 없거나 손자를 잇지 못해 한숨을 쉬는 이들이 가끔은 아직 있지만 대개는 그 가치관마저 포기하는 현실이다. 나의 친지들 중에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아들을 얻기 위해 돈을 들여 계약으로, 심지어 외도(外道)를 해서 혼외[out of wedlock] 관계로 라도 기어이 아들을 낳은 이가 있었다. 물론 맹자의 가치관대로 반드시 후사를 얻기 위해서 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통념적 가치관이 아들을 가져야 한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효도조차도 퇴색해가는 처지에 ‘아들을 얻지 못하면, 최대의 불효(不孝)’라는 유가(儒家)의 가르침을 알고 있는 이도 지금 세상에는 별로이다. 맹자를 읽지 않고, 어른들의 가르침을 도무지 들을 새가 없이 좋은 대학 입시 준비에, 취직 문제, 국제 경쟁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영어 한 줄 더 배워야 하는데 언제 할아버지 따라 제사 지내러 갈 새가 있단 말인가? ‘후사(後嗣)가 뭐지?’ ‘왜 아들을 낳아야 해?’ ‘제사는 낡은 망령(妄靈)의 형식 아냐?’ 조상 산소도 내버리는 처지가 자랑 넘치던 그 소위 양반(兩班) 가문에서도 제사 안 지내는 경우가 생겨나는 세상이니 말이다. 제사를 왜 지내는지도 모르고, 산소를 지킬 이유도 없어졌으며, 위토(位土)나 종산(宗山)도 부동산 가치 외에는 의미가 없어지는 현실에선 부귀 다남은 커녕, 종가(宗家)의 아들 하나 잇는 것조차 무덤덤해지는 사회의 가통(家統)의 가치관은 이제 무너지는 것인가? 내가 놀라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많고 많은 양반 가문(兩班家門)들도 종재(宗財)를 놓고 재판과 싸움은 계속하면서도 선조의 제사를 이어야 했던 후사(後嗣)의 단절, 아들을 갖지 못하는 최대의 불효(不孝)는 아무도 사회적 이슈[issue]로 부각하거나 토론조차 하려 들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공맹(孔孟)과 유가(儒家)의 핵심 가치는 효제(孝悌)에 있고, 그것은 또 종통(宗統)을 이어 국가의 종묘사직(宗廟社稷)을 지켜야 했건만 다 물 건너 가버린 빛바랜 단청(丹靑)과 같으니. 아들이 없어도, 손자가 없어도, 최대의 불효도, 우리의 전통 가치관도, 무덤덤할 뿐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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