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nal Phase/ 푸틴의 전쟁이
푸틴의 전쟁(Putin's war)이 이젠 마지막 단계(final phase)에 접어들었다고, 미국의 ABC 뉴스가 우크라이나 정부를 인용해 일전에 보도했다. 그것은 러시아 군대의 공격을 막아냈다는 뜻만이 아니라 2014년에 빼앗긴 지역까지 회복한다는 것으로 해석했다. 석 달을 휘저어도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이기지 못하고, 서방은 핵전쟁을 일으킬까 푸틴 눈치 보면서 돕다가 공격용 무기까지 보내며 우크라이나의 전략과 그들의 뛰어난 용맹이 결합하여 오히려 우크라이나가 승기(勝機)를 잡을 것 같다. 2014년에 차지했던 크림 반도와 돈바스(Donbas) 지역마저 탈환하고, 심지어 몰도바(Moldova)의 동쪽지역을 차지한 것까지 다 회복하는 쾌거를 보여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나아가서 푸틴의 야욕을 꺾어 그의 유럽 서진(西進)의 꿈을 분쇄 하며, 체츠니아, 그루지아, 넓게 는 카자흐스탄 등의 중앙아시아로의 팽창도 완전히 저지하게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푸틴의 장기 집권조차 끝을 내고 완전한 몰락을 가져오기를 서방이 소원하니, 푸틴의 건강에 적신호가 왔다며 그를 암살하려 던 시도도 있었다는 정보라는 보도까지, 서방 군사 전문가들도 러시아의 패색(敗色)을 예견하니 말이다. 그러면 러시아의 새로운 역사의 방향을 돌리고, 유럽의 안보 불안이 해소되며, 세계는 더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평화의 미래로 순항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푸틴의 이념은 무엇이었나? 피터 대제(Peter the great)의 왕조주의에서 볼셰비키(Bolshevik)의 공산 혁명 후 소련으로 세력을 키웠으나 결국은 1990년에 망했으니, 붉은 공산당 깃발을 크렘린 궁에서 내릴 때는 단 한 명의 반대자도 나타나지 않았을 정도로 공산주의는 허망하게 패망하고 말았다. 통폐합했던 위성 국가들도 독립해 나갔고, 러시아는 다시 페레스트로이카(Perestroika)로 민주화라는 명목의 길을 걸었다. 소련 몰락 후엔 이념에 목 말랐으니 공산주의 말고는 아는 게 없던 차에 소위 ‘합의’의 단체로 옛 영광을 추구하는 강력한 중앙 정부의 길을 갔다. 1999년 12월31일 대통령 직무 대행이 된 푸틴은 경제와 정치 체제의 안정화를 위해 합의를 부여 받아 러시아의 법과 도덕성을 위해 러시아 정교회와 결탁하고 서방의 자유주의를 배격하고서 러시아 고유의 보수주의를 표방해왔다. 그것은 볼셰비키의 유라시아주의(Eurasianism)를 새롭게 한 신 유라시아주의였다.
20세기 초 공산주의 운동에 등을 돌리고 서방으로 망명한 러시아의 지식인들은 러시아는 유럽 문명의 지진아(遲進兒)로 보았고, 볼셰비키들은 개조 된 사회를 추구했다. 이에 러시아는 유럽과 아시아에 걸친 두 기질(氣質)의 유라시아 문명을 형성하여 세계적 대표 국가를 표방했다. 1921년 ‘동쪽으로의 탈출(Exodus to the East)’이라는 방향으로 영토 확보를 하고, 변경의 이민족은 동화 시키고 지도자는 제국의 우선주의로 나아가며 개방 경제의 민주주의나 지방 정부 또는 세속적 자유주의는 위험시 하여 철저히 배격하려 했다. 그 모델은 칭기즈칸이었으니, 18세기에 표트르 대제(Peter the Great/ 1672~1725)는 제국의 서구화를 추구했지만 공산주의 소련은 중앙 집권적인 복종과 통제 체제로 나아갔다. 그런데 1991년의 소련 붕괴로 지정학적 재앙을 맞아 러시아 애국주의자들은 이제 로마[Rome/ Russia]와 카르타고[Carthago/ 英美]의 싸움이라고 본 것이 두긴(Alexander Dugin/ 1962-)의 이론이다. 공동의 선(善)을 우선하는 영원한 로마(Russia)와 개인주의와 물질 주의에 기초한 영원한 카르타고(英美)와의 대결로 본 것이다. 그 두 세력은 공존할 수 없는 숙명적 투쟁이라 생각하고 개인적인 욕구와 필요를 추구하는 다수의 국가들과 이상주의적이고 공동체적인, 거의 종교적인 러시아 제국의 세계를 표방하는 가치의 보수적 혁명이라는 주장이다. 두긴의 야심은 유라시아 이상주의 보다 지정학적 범위를 확대하여 몽고와 만주와 신강성(新彊省)에서 부터 서쪽으로는 말 발굽 모양의 폴란드-루마니아 일대의 카르파티아(Karpatian Mts) 산맥까지, 남서쪽으로는 인도양 까지였다. 두긴이 푸틴의 멘토(mentor)가 된 셈이니, 러시아 대제국을 위해 개인 자유를 제한, 전통 가족 중시, 동성애 반대, 러시아 정교회의 대중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게 된다. 서방 지식인들은 두긴의 망상이라고 일축했지만 푸틴의 텍스트(text)가 되어 20년 간 실행했고, 마침내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일관되어왔던 것이다. 이제 그 망상은 확실히 무너지고 있는가?
푸틴의 전쟁(Putin's war)이 이젠 마지막 단계(final phase)에 접어들었다고, 미국의 ABC 뉴스가 우크라이나 정부를 인용해 일전에 보도했다. 그것은 러시아 군대의 공격을 막아냈다는 뜻만이 아니라 2014년에 빼앗긴 지역까지 회복한다는 것으로 해석했다. 석 달을 휘저어도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이기지 못하고, 서방은 핵전쟁을 일으킬까 푸틴 눈치 보면서 돕다가 공격용 무기까지 보내며 우크라이나의 전략과 그들의 뛰어난 용맹이 결합하여 오히려 우크라이나가 승기(勝機)를 잡을 것 같다. 2014년에 차지했던 크림 반도와 돈바스(Donbas) 지역마저 탈환하고, 심지어 몰도바(Moldova)의 동쪽지역을 차지한 것까지 다 회복하는 쾌거를 보여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나아가서 푸틴의 야욕을 꺾어 그의 유럽 서진(西進)의 꿈을 분쇄 하며, 체츠니아, 그루지아, 넓게 는 카자흐스탄 등의 중앙아시아로의 팽창도 완전히 저지하게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푸틴의 장기 집권조차 끝을 내고 완전한 몰락을 가져오기를 서방이 소원하니, 푸틴의 건강에 적신호가 왔다며 그를 암살하려 던 시도도 있었다는 정보라는 보도까지, 서방 군사 전문가들도 러시아의 패색(敗色)을 예견하니 말이다. 그러면 러시아의 새로운 역사의 방향을 돌리고, 유럽의 안보 불안이 해소되며, 세계는 더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평화의 미래로 순항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푸틴의 이념은 무엇이었나? 피터 대제(Peter the great)의 왕조주의에서 볼셰비키(Bolshevik)의 공산 혁명 후 소련으로 세력을 키웠으나 결국은 1990년에 망했으니, 붉은 공산당 깃발을 크렘린 궁에서 내릴 때는 단 한 명의 반대자도 나타나지 않았을 정도로 공산주의는 허망하게 패망하고 말았다. 통폐합했던 위성 국가들도 독립해 나갔고, 러시아는 다시 페레스트로이카(Perestroika)로 민주화라는 명목의 길을 걸었다. 소련 몰락 후엔 이념에 목 말랐으니 공산주의 말고는 아는 게 없던 차에 소위 ‘합의’의 단체로 옛 영광을 추구하는 강력한 중앙 정부의 길을 갔다. 1999년 12월31일 대통령 직무 대행이 된 푸틴은 경제와 정치 체제의 안정화를 위해 합의를 부여 받아 러시아의 법과 도덕성을 위해 러시아 정교회와 결탁하고 서방의 자유주의를 배격하고서 러시아 고유의 보수주의를 표방해왔다. 그것은 볼셰비키의 유라시아주의(Eurasianism)를 새롭게 한 신 유라시아주의였다.
20세기 초 공산주의 운동에 등을 돌리고 서방으로 망명한 러시아의 지식인들은 러시아는 유럽 문명의 지진아(遲進兒)로 보았고, 볼셰비키들은 개조 된 사회를 추구했다. 이에 러시아는 유럽과 아시아에 걸친 두 기질(氣質)의 유라시아 문명을 형성하여 세계적 대표 국가를 표방했다. 1921년 ‘동쪽으로의 탈출(Exodus to the East)’이라는 방향으로 영토 확보를 하고, 변경의 이민족은 동화 시키고 지도자는 제국의 우선주의로 나아가며 개방 경제의 민주주의나 지방 정부 또는 세속적 자유주의는 위험시 하여 철저히 배격하려 했다. 그 모델은 칭기즈칸이었으니, 18세기에 표트르 대제(Peter the Great/ 1672~1725)는 제국의 서구화를 추구했지만 공산주의 소련은 중앙 집권적인 복종과 통제 체제로 나아갔다. 그런데 1991년의 소련 붕괴로 지정학적 재앙을 맞아 러시아 애국주의자들은 이제 로마[Rome/ Russia]와 카르타고[Carthago/ 英美]의 싸움이라고 본 것이 두긴(Alexander Dugin/ 1962-)의 이론이다. 공동의 선(善)을 우선하는 영원한 로마(Russia)와 개인주의와 물질 주의에 기초한 영원한 카르타고(英美)와의 대결로 본 것이다. 그 두 세력은 공존할 수 없는 숙명적 투쟁이라 생각하고 개인적인 욕구와 필요를 추구하는 다수의 국가들과 이상주의적이고 공동체적인, 거의 종교적인 러시아 제국의 세계를 표방하는 가치의 보수적 혁명이라는 주장이다. 두긴의 야심은 유라시아 이상주의 보다 지정학적 범위를 확대하여 몽고와 만주와 신강성(新彊省)에서 부터 서쪽으로는 말 발굽 모양의 폴란드-루마니아 일대의 카르파티아(Karpatian Mts) 산맥까지, 남서쪽으로는 인도양 까지였다. 두긴이 푸틴의 멘토(mentor)가 된 셈이니, 러시아 대제국을 위해 개인 자유를 제한, 전통 가족 중시, 동성애 반대, 러시아 정교회의 대중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게 된다. 서방 지식인들은 두긴의 망상이라고 일축했지만 푸틴의 텍스트(text)가 되어 20년 간 실행했고, 마침내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일관되어왔던 것이다. 이제 그 망상은 확실히 무너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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