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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글

정성의 술/ 截髮易酒

정성의 술 / 截髮易酒

술꾼들이 흔히 세계 3대 명주(名酒)로 프랑스의 질 높은 브랜디(Brandy)인 코냑(Cognac), 스코틀랜드에서만 발효하여 제조하는 위스키 증류주인 스카치(Scotch), 중국 귀주성(貴州省)의 마오타이주(茅臺酒)를 치기도 한다. 그러나 아주 옛날 참 귀한 술이 하나 있었으니, ‘절발역주(截髮易酒),’ 머리칼을 잘라서 바꿔온 술이란 말로 참 깊은 정이 밴 고귀한 술이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유명한 멋쟁이 도연명(陶淵明)이 동진(東晉) 사람인데, 그의 증조부가 도간(陶侃/ 259-334)으로 젊어서 홀 어머니 담씨(湛氏)를 모시고 살았다. 어느 날 도간의 친구인 범규(范逵)가 불쑥 찾아왔지 뭔가. 도연명도 말단 벼슬을 집어 던지고 귀거래사(歸去來辭)를 노래하며 고향으로 돌아와 집에서 빚은 술을 두건에 다 걸러서 마시면서도 자유롭게 살았지만, 그의 증조부 역시 가난했던 모양, 도간의 홀 어머니 담씨는 아들이 친구 범규 앞에서 체면을 잃지 않게 하려고 생각한 끝에 자신의 머리를 잘라 팔고서 술과 안주를 사다가 아들의 친구를 대접했다 네. 친구 어머니의 정성에 감복한 범규는 훗날 도간을 조정에 천거 하여 출세하게 하였고, 도간도 40년 동안 이름난 장군과 재상으로 큰 공을 세울 수 있었다. 그 절발역주(截髮易酒)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술이 아니었던 가?

범규(氾逵)라는 그 인물은 흥이 나면 그렇게 불쑥불쑥 아무 때나 친구 찾아가기를 좋아했던 모양인가? 그가 하루는 다른 친구 곽태郭泰)를 밤에 또 갑자기 방문한 적이 있었다. 범규가 본래 좋은 친구였는지, 곽태 역시 그를 진심으로 환영하면서 마침 비가 오는 밤이었는데도 곽태는 비를 무릅쓰고 텃밭에 나가 부추를 베어다 정성껏 전을 부치고 술을 대접했다. 이는 남조(南朝) 때 송(宋)나라의 범엽(范曄/ 398-445)이 쓴 후한서(後漢書)의 학자 곽태(郭泰/ 128-169 AD)에 관한 이야기다. ‘비를 무릅쓰고 부추를 벤다.’는 뜻의 모우전구(冒雨剪韭)의 고사(故事)로 친구를 대접하려는 진솔한 마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밤에 비를 무릅쓰고 손수 나가서 부추를 베다가 부추 국과 부추 전을 만들었던 지극한 정성(作湯餠以款之)이어서 근 2천 년을 전해오는 미담이 되었을 정도라. 세상에 보기 드물게 정성스런 곽태는 당시 어지러운 시대에 벼슬을 추구하지도 않고 고향에 은거하면서 많은 제자를 길렀던 유명한 학자가 되었고, 혼란 속에서도 화(禍)를 당하지 않았던 인물이었다. 정말 고귀한 술, 절발역주가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