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인의글

파로호 전투/ 兜率山光輝

파로호 전투/ 兜率山光輝

강원도 화천 저수지를 파로호(破虜湖)라 한 것은 ‘오랑캐를 크게 격파한 호수’라는 말, 1951년 6.25때 화천지수(華川池水)에 이승만 대통령이 붙인 새 이름이었다. 거기가 한국 동란 때의 최대 격전지 중의 하나였던 파로호 전투가 벌어진 곳, 화천 수력 발전소의 호수이다. 중공군 약 2만 명을 사살하거나 포로로 잡았던 승전의 역사로 ‘중국 오랑캐를 쳐부순 호수’라는 뜻으로 대통령이 그렇게 이름을 지었던 파로(破虜)의 호수는 북한강 상류의 거대한 인공 호수로 양구 일대에 위치하고, 일본이 조선을 점령한 뒤 86m의 높이로 화천 댐을 건설하면서 생겨난 것이다. 6.25 초기에 북한에 점령 당했다가 치열한 도솔산 전투로 탈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도솔산 광휘(兜率山 光輝)는 도솔산의 빛나는 영광이란 말로, 6.25때 강원도 양구와 인제 사이의 험한 산악 지대에서 남, 북한의 군대의 치열한 격전이 벌어졌고, 아군이 크게 승리하여 기쁨을 노래하는 역사적 사건. 도솔산은 전북에도 있지만 여기 도솔산은 1,148m의 강원도 태백산맥의 험준한 산이다. 1951년 6월 4-19일에 자그마치 9일 간의 격전 끝에 우리 해병대가 적군 2,263명을 사살하고 아군 135명의 전사자를 내어 성공했던 대단한 공적이었기 때문이다. 유엔군이 1951년 4월과 5월에 걸쳐 대대적인 반격의 공세를 퍼붓고, 다시 3차 공격 때에 벌어진 전투를 도솔산 전투라고 한다. 그에 대항한 북한과 중공군은 자그마치 54만 명을 투입하여 소위 5월 공세라는 엄청난 전투가 일어났던 것이니 어떠했겠는가.

거기를 우리가 확보하지 못하면 한국군이 북상할 수가 없을 정도로 요충지였는 데, 북한 공산군이 천연의 지세와 전술적 이점을 가지고 굳센 진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4,200명의 북한 병력이 지뢰를 대거 매설 하고서 자동화기와 수류탄으로 완강히 저항하여서 먼저 진격하던 미국 해병대 1사단 제 5연대가 큰 손실만 입은 채 고지 점령은 실패하고 퇴각하였다. 이에 한국 해병대가 강력한 야간 기습 공격으로 육박전을 감행. 하나 씩 점령하면서 24개 고지를 빼앗아 전진할 수 있었다. 치열한 공방전(攻防戰)은 빼앗고 또 빼앗기면서 마침내 아흐레 만에 완전히 탈환하는 개가를 불렀다. 이때 아군은 700 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북한군 2,263명을 사살하고 44명을 생포했다. 후에 우리 해병대 제 1연대가 ‘도솔산의 노래’를 지어 그 기백을 해병 후배들에게 전수하였던 것이다.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의 표창을 받았고, 해병대의 5대 작전 중의 하나로서 ‘도솔산의 빛[光輝]’이라는 이름으로 기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