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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글

彼一時也 此一時也/ 그의 때와 나의 때

彼一時也 此一時也/ 그의 때와 나의 때

“이승만(李承晩)은 한문 공부하고 영어 하고서 대통령을 했잖아, 그런데 나는 한문 공부도 하고 영어도 배웠으나 왜 별 볼일 없는 거야?” 그런 생각해본 적 있는가? “대과(大科)에 급제도 못했는데 우암(尤庵 宋時烈/ 1607-1689)은 좌의정까지 지냈지만 지금 나는 사법 고시와 행정 고시에 다 합격했는데도 서기관(書記官) 뿐이 못 했잖아?” “공자와 맹자는 지금의 중국 땅 내륙 일부만 보았을 뿐인데 천하(天下)를 논했고, 나는 오대양 육대주(六大洲)를 다 다녔는데 세계 평화를 왜 설파 하지 못하지?”

우리가 어려서 영어 공부할 때 안현필 씨가 지은 ‘영어 실력 기초’라는 참고서를 많이 이용했는데, 간간이 양념으로 그 속에 유머와 위트 있는 예화를 끼워 넣었다. 그 하나가 아직도 생생한데, “선생님, 조오지 워싱턴은 선생님 나이에 미국의 대통령을 지냈는데요?” “그랬지, 워싱턴은 네 나이에 측량 기사가 되었다 네!” 피장파장이라는 말, 그래 나는 아직도 분필 가루 마시고 있지만 너는 뭐냐? 너와 같은 어린 나이에 조오지는 벌써 당시에 소중한 측량 기사로 일했다는 데! 남의 말 하기는 쉽지만 내가 그리 되지 못함을 대개는 알지 못하고, 또 상황과 시대가 다르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굳이 정승과 대통령이어야, 학자와 성자여야 할 필요는 없다. 때에 맞는 사람으로 시대가 요구하는 삶을 바로 살 뿐이다. 동방삭 같은 사람도 때와 그를 알아주는 좋은 임금을 만나지 못했던 게 아닌가. 설사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원망하거나 성내지 않는 것이 진정한 군자(君子)라고 공자도 설명했던 것이다.

1500년 전에 그와 같은 질문을 받았던 그토록 실력자이며 재주 꾼이었다는 동방삭(東方朔/ 154-92 BC)이 그 대답을 그의 에세이(essay)격인 답객난(答客難)에 명확히 하였으니, 그것이 소위 “그 사람은 그 한 때이고, 이 사람은 이 한 때이다(彼一時也요 此一時也라).”라는 것이다. 혹시 최근에 용인의 수지에서 시작했다는 탄천(炭川) 축제에 가보면, 그 동방삭이 거기서 숯을 씻었다는 전설에서 더 자세히 알 수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명답 인 것 같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은가? 요새 말로 "타이밍이 전부야(Timing is everything)!“ 하는 뜻 같이 들린다. 사람의 운명이란 시공(時空)에 얽혀있으니 그 때가 그런 사람을 필요로 하여 그리 훌륭히 쓰고, 이때는 이 시공에서 나 같은 사람이 많거나 시대가 요구하는 적절한 인물이 아니어 서가 아니겠는가. 윤석열이 송시열과 대통령 경선을 하겠는가, 이황(李滉)이 공자(孔子)와 학문을 겨루겠는가? 공자는 그 때의 학자요, 16세기 조선은 그 시대의 퇴계(退溪)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2022년에는 윤석열이 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고, 1948년에는 이승만이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어야만 했었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이 바로 동방삭의 대답이다, ‘그때는 그 사람이요, 이때는 이때의 상황이기 때문에 내가 이런 형편인 것이다.’ ‘피일시(彼一時也)요, 차일시야(此一時也)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