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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글

동류에 머리를 감고/ 流頭 禊浴 (2)

 

제부도에서

동류에 머리를 감고/ 流頭 禊浴 (2)

 신라 때부터 기록이 전하는 유두(流頭) 명절은 ‘흐르는 물에 불행의 액(厄)을 씻어내기 위하여 머리를 감는, 몸과 마음을 정화(淨化)하는 날이었다. 한문으로는 그걸 ’동쪽으로 흘러가는 냇물에 머리를 감는다는 말의 ‘동류수두목욕(東流水頭沐浴)’이다. 왜 동류(東流)냐고? 해가 돋는 방향의 동쪽은 항상 양기(陽氣)가 솟아 오르는 방향이니 힘찬 정기가 강하게 흐른다고 믿었기에 동쪽으로 흘러가는 냇물이었다. 우리는 정결한 민족이며, 하늘의 신이 사랑하여 환웅(桓雄)을 세상으로 보냈으니 단군(檀君)이 시작한 백성이요, 그 하늘을 사랑하여 언제나 정결한 사람으로 살고자 했기에 단오(端午)에도 창포 물에 머리를 빗고, 유월 유두에는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았다.

 단순한 농경 사회의 부녀들의 삶에도 유두 절이 얼마나 변화를 주는 기쁨이 되었겠는가. 명절이라 마음 놓고 계곡이나 냇가로 모여 나가서 머리를 감으며 물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을 것이니. 남자들은 모여서 액(厄) 막이라며 계음(禊飮)의 술을 마시면서 그렇게 했다. 오랜 옛날 유명하게 전해오는 왕희지(王羲之/ 303-361)의 난정기(蘭亭記) 같은 그런 경우도 동양의 비슷한 종교적 의식과 함께 진화해온 모임이었던 것이다. 유교적 풍습이 정착한 조선에서는 유두에 새로 거두는 햇 과일이나 수확으로 천신(薦新)을 올리며 조상에 감사하는 차례(茶禮)도 지냈고, 선비들은 유두음(流頭飮), 유두연(流頭宴)이라며 계곡이나 정자에 모여 술 마시고 시를 읊었다. 결국 인간의 염원은 자연스레 무더운 여름이 오니 질병과 재액(災厄)을 막고 싶었고, 자신보다 큰 신이나 하늘에 복을 기원하였던 것이다.

 동시에 휴식과 즐거움의 소창(消暢)이나 향연을 원하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 아니었겠는가. 그것은 긴 세월을 내려오면서 종교적 의식과 사회 관습의 많은 변천으로 지금도 그와 같은 맥락이 우리의 생활에 스며있지만 그 관련성은 잊어버린 것 같다. 그래도 그것은 같은 인간의 심성에서 나왔고, 그러한 경향성은 옛 사람이나 지금이나 어찌 다를 바가 있을까. 신라(新羅) 시대의 사람들이 유두에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았던 수두(水頭)나 물맞이가 우리의 낭떠러지에 내리는 계곡물에 물을 맞으면서 더위를 식히는 것과 근본 같은 심성의 소망과 즐거운 놀이가 아니겠는가. 여유가 있고 여가가 있는 직장인들이 일을 멈추고 휴가를 떠나 바닷물에 해수욕을 함이 또 어찌 같은 맥락이 아니 리요. 한양 도성(漢陽都城)에선 정릉 계곡이나 낙산 밑에서 유두를 즐겼다면 우리는 지금 강원도와 충청도로 해수욕을 가는 것과 같으리라. 열대 동남아의 신년 전통이라는 물 뿌리기의 송크란(Songkran)도 물맞이를 다르게 즐기는 정화 의식의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지 않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