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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글

한여름 밤의 도깨비/ 無林魍魎

한여름 밤의 도깨비/ 無林魍魎

 한여름 밤의 무더위를 식히는 도깨비 이야기 듣곤 했다. 모기도 성가시지만 열대야(熱帶夜)는 시골에서 실로 지겨웠던 때가 있었다. 춥다면 불을 지피면 되지만 더위는 통제하기가 여간 버겁지 않던 게 잠 못 자던 여름이었다. 삼 베 홑 이불 감고 이 방과 저 방을 갔다가 마루조차 뜨끈한 것 같고, 부채도 더운 바람만 일었지, 우물로 가서 찬 샘물 한 바가지를 뒤집어쓰면 금새 추워져도 잠시 뒤면 다시 열기는 더하지 않았던 가. 모깃불을 피워 놓고 들 마루에 둘러 앉아 할머니는 도깨비 야그를 시작한다, 무르익을 무렵 클라이맥스에 오를 때면 도깨비가 나타나게 마련, 몽달 귀신, 처녀 귀신도 도깨비 얘기가 오싹해지면서 더위를 잊을 정도였으니까. 아마도 최고의 납량(納凉) 비법이 아니었겠는가. 아이들은 무서워 덜덜 떨 정도가 되도록 말이다. 그러다간 몰려오는 피로감에 어느새 약간 서늘한 기운이 돌면서 잠에 빠지곤 한다.

 산에는 산 도깨비, 공동 묘지엔 귀신 도깨비가 있지만 심지어 낮 도깨비까지 있어 으슥한 곳에선 대명천지 한낮이라도 도깨비 나올 까봐 마음 쓰이던 건 그 도깨비 얘길 순진하게 믿었기 때문이 아닌가. 도깨비 얘기 좋아하면 도깨비 많아지고, 그걸 믿으면 환한 낮조차 도깨비가 나올 수가 있으니까. 그래서 사랑방 점잖으신 할아버지들도 귀찮은 작자가 늘 따라다니면 골칫거리라며 떼어버릴 수 없을 땐, “에 그놈, 여교망량(如交魍魎) 같으니 라 구!” 망량은 도깨비를 문자로 하는 말이고 여교(如交)는 친구로 사귐과 같다는 뜻이니 ‘도깨비를 사귀어서 항상 친구처럼 붙어 다닌다.’는 속담이었다. 친구를 안 사귀면 없고, 도깨비도 믿지 않으면 어찌 따라 오겠는가?

 그래서 옛날부터 어른들이 그랬다, “무림망량(無林魍魎)‘이라고! 숲 이 없으면 도깨비도 없다는 말이다. 도무지 도깨비가 숨을 데가 없으니까. 다른 말로 하자면 도깨비를 믿지 않으면 도깨비가 생각 속에 숨을 데도 없어지니까. 귀신도 믿으면 달라붙고, 받자 하지 않으면 귀신도 발 붙일 데 있 간? 더위를 오싹하게 식히는 도깨비 얘기가 옛날 에어컨디션도 없던 시대에야 한 피서방법이었을지라도, 그럴 필요도 없거니와 에어컨 속에 도깨비가 숨진 못하지, 숲이 없는데 어디 도깨비 은신처가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