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인의글

작품의 가치/ 洛陽紙貴

1995년 이우복회장님으로부터 받은 선물

작품의 가치/ 洛陽紙貴

 시가(詩歌)의 시가(時價)는 지금 별로인 것 같다. 2, 30년 전에는 우리나라에서 등단(登壇)이다 시인으로 데뷔했다 하면서 시집도 많이들 내고, 시를 쓰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던 걸로 기억이 된다.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도 시집을 출판해서 준 사람들이 여럿이었으니까. 허나 지금은 시를 읽는 사람이 아주 귀할 정도로 시(詩)에 대한 열기가 식어버린 것 같다. 시집을 읽는 사람도 적어 시집이 별로 팔리지 않고, 그냥 줘도 거의 읽지 않을 정도이니 말이다. 동영상을 보는 시대라서 책을 읽지 않는 조류가 팽배한 것도 있지만 문학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준 것 같다. 시를 쓰거나 문학을 하는 사람들이 책이 잘 안 팔려서 창작 활동이 위축되고 있다. 좋은 글은 모두 종이에 붓으로 베껴서 읽던 고대에는 ‘낙양지귀(洛陽紙貴)’라는 말이 생겼고, 그걸 조선의 선비들은 다 알았던 유명한 고사(故事)도 있었는데.

 낙양(洛陽)이 수도여서 지금 우리의 경우, “서울의 종이 값이 크게 올랐다”는 뜻이 된다. 현대적으로 하자면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간다’는 의미와 같다. 진서(晉書 左思傳)에 따르면 서진(西晉)의 유명했던 문학가 좌사(左思)라는 사람이 삼도부(三都賦)라는 글을 지었는데, 그게 유명해져 너도나도 그 글을 베끼느라 서울의 종이가 다 품귀(品貴)가 되자 지가(紙價)가 천정부지(天井不知)로 인플레이션을 타는 게 아닌가! 좌사가 어렸을 때 그의 아버지가 걱정을 했다, “내 어렸을 때를 비하면 너는 근본 방법이 없겠다.” 그 집안이 대대로 학문을 했던 집안인데 좌사는 어려서 공부를 하고 글씨를 쓰며 거문고를 배우기도 했지만 큰 진전이 없었다. 아버지가 하는 말도 그랬지만 좌사는 실로 키도 작아 외모도 출중하지 못했으며 언변도 없었기에, 스스로 결심을 하고 놀러나가지도 않고 집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1년에 걸쳐 제도부(齊都賦)를 썼는데, 가족이 낙양으로 이사하는 바람에 이번에는 삼도부(三都賦)를 낙양에서 쓰게 되었다. 좌사는 타향에서 자료를 모으고 열심히 좋은 글을 쓰는데 10년의 세월을 보내면서 지은 명문(名文)이라 성공한 것이다.

 그의 글을 당시에 저명한 문학가 인 장화(張華)에게 품평을 의뢰했고, 장화는 아주 기뻐하면서 다시 당시의 학자 황보밀(皇甫謐)에게 보내서 보게 했으며, 황보밀도 대단히 칭찬을 하고서 거기에 서문까지 써주었다. 그로서 서울 사람들이 그 글을 베끼느라 낙양의 종이 값이 치솟았을 정도라서 지금까지도 유명한 고사로 남은 낙양지귀(洛陽紙貴)가 된 것이었다. 꾸준한 노력과 계속하는 공과(功課)는 때가 오는 법이다. 혹 세상에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다 해도, 최소한 소중한 자기 작품의 열매를 맺을 수는 있지 않겠는가. 지금이야 종이로 베끼는 시대도 아니지만 내가 즐기고 내가 추구하는 바가 있다면, 나의 작품을 끝내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지인의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3대도시의 예찬/ 左思之三都賦  (1) 2022.07.30
Classic & Classy/ 세련된 할배  (1) 2022.07.30
한여름 밤의 도깨비/ 無林魍魎  (24) 2022.07.27
삼복더위/ Dog Days  (0) 2022.07.26
거울 속의 난새/ 形影相弔  (7) 2022.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