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복 날/ 伏日和庚日

남한산성

말복 날/ 伏日和庚日

 태초에 천지가 창조 될 때 비로소 시간이 시작되었으니 창세기에는 그 기본 단위가 1주일로 7일이어서 지금도 우리가 요일(曜日)의 이레 동안을 한 주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동양의 시간은 태극(太極)이 음양(陰陽)으로 나뉘고, 하늘의 양(陽)과 땅의 음(陰)이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해가 가고 달이 돌며 날짜가 돌아간다는 것이다. 하늘의 양을 다시 10개의 줄기로 하여 십간(十干)이라 하고 땅에는 12개의 가지들(earthly branches)로 구성, 그 10간과 12지지(地支)가 조화를 하면서 시간이 돌아가는 것이다. 내일이 말복(末伏) 마지막 더위로 상징 되는 날인데, 왜 복날[伏日]을 경일(庚日)이라 하는가? 간지(干支)의 천간(天干) 10개 중에서 일곱 째의 경(庚)자가 들어가는 날이라는 말이다. 동양의 음양오행설에 기초한 철학이 지난날 우리 생활에 보편화 되었기에 날짜까지도 간지(干支)의 배합으로 매일 정했기 때문이다. 날마다 의 일진(日辰)으로 날을 받아야 길일(吉日)이 되게 하고 제사의 축문에도 그 해의 간지와 그 날의 간지까지 구별해야 귀신도 알아본다고 여기지 않았는가. 심지어 점을 치는 일에도 파티를 하는 날짜도 간지로 하며, 사주팔자(四柱八字)도 간지에 근거하고 있다고 믿었으니 복일이 경일(庚日)인 것은 예사가 아니었겠는가.

 이 7번째의 천간(the 7th heavenly stem)인 경(庚)은 그래서 한문에서 제 7번 곧 7째(the 7th)라는 대칭(代稱)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또 해[年]라는 뜻으로도 흔히 쓰인다. 가끔 우리가 “아 우리는 동경(同庚)이다” 하면서 동갑(同甲)네라 하며, “생경(生庚)이 어떻게 되셔요?”라면 태어난 해가 언제냐는 물음이 된다. 혹 나이를 물을 때, “연경(年庚)이 어떻게 되시는지?”라고, 또 경치(庚齒), 귀경(貴庚/ 귀하의 나이)으로도 연령을 물을 수 있다. 지금도 더러는 혼례에  신랑의 사주단자(四柱單子)를 보내는 경우가 있지만 예전에는 거의가 그랬으니 그 사주(四柱)를 비단이나 한지에 적은 글귀를 경첩(庚帖)이라고 하는데, 그 역시 생년과 관계된 내용이라서 했던 표현이었다. 천간(天干/ the heavenly stem)은 10개로 된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이니 10가지의 줄기[干/ stem]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기본 요소로 본 것인데, 이를 십간(十干)이라 한다. 지지(地支)는 12개이니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로 십이지(十二支)라고 하는 12가지의 땅의 가지들이다. 그래서 천지(天地) 곧 음양((陰陽)이 오행(五行)과 더불어 조화를 이루며 변환이 성취되는 원리의 구성 요소인 것이다. 만물에는 이 두 가지 하늘의 10간과 땅의 12지, 곧 하늘의 10개 줄기와 땅의 12개 가지들의 조화로 시간이 변천 한다고 본 것이다. 복날[伏日]을 경일(庚日)이라는 것은 삼복(三伏)이 다 경일이 되기 때문인데, 양기(陽氣)가 극도로 올라가는 하지(夏至)에서 3번 째 경(庚)자가 들어가는 날이 초복(初伏)이요, 다시 열흘 뒤인 그 네 번째 경자가 들어가는 날을 중복(中伏)이라 하고, 입추(立秋) 뒤의 열흘이 되는 날이 천간의 경(庚)자가 들어가면서 말복(末伏)이 되는 까닭이다. 3복의 날이 다 경일(庚日)이 되는 고로 복날을 경일이라 하는 것이다.

 말복(末伏)은 한문에서 추복(秋伏)이라 고도 하니 입추가 지난 열흘 째로 음력 7월이며 양력 8월이라 가을 기운을 이미 품고 있는 복날이라는 말이 된다. 엎드릴 복(伏)은 감춘다 거나 아래에 숨는다는 말로 복일(伏日)에서는 음기(陰氣)를 땅속 아래에 감추어 간직한다는 의미로 쓰인 것이다. 양기가 극도로 오른 하지(夏至)에 음기(陰氣)가 비로소 잉태된다고 본 것이니 그때부터 융성한 양기에 눌려 지극히 작은 음기가 생겨나기 시작하였으니 하지로 부터 약 30일 가까운 세 번째 경일(庚日)이 초복인데 지극히 작은 음기가 아직도 엎드려 숨을 수밖에는 없지 않겠는가. 그리고 10일이 지난 경일에도 엎드리니 중복이요, 하지로부터 한 달 이상이 지나서는 마지막으로 숨어 엎드리는 말복이 된다. 그렇지만 이때는 음기가 조금 힘을 얻어서 추복(秋伏)이라 하니 가을이 시작되는 때의 엎드림인 까닭이다. 그래서 조금 더 실감 나게 추복을 추포복(秋包伏)이라고도 했으니 ‘가을을 싸 안고 있는 복날’이라는 뜻이다. 이제는 점점 태양도 우리의 북반구에서는 아래로 내려가니 그 양기가 조금씩 식으면서 음기(陰氣)가 자라게 된다는 원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