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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글

하늘에 맞춰 살다/ 處暑雨愁

 

하늘에 맞춰 살다/ 處暑雨愁

 오늘이 어언 처서(處暑). ‘뜨거운 더위도 꼬리 감춘다’고도 한다. 곳 처(處)자는 처소(處所), 거처(居處), 처신(處身), 처리(處理)의 단어처럼 존재나 결정 또는 물러남의 의미가 있어 처서의 처(處)는 그친다는 지(止)의 뜻이 되므로 뜨거운 더위가 가신다는 의미로 푼다.

 지금은 농사꾼이 아주 적어 날씨를 크게 걱정하면서 먹고 사는 사람이 별로 지만, 예전의 농경 사회에선 너도 나도 ‘하늘을 보고 밥을 먹어야 했다[看天吃飯].’ 그 뜻은 하늘에 맞추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니 하늘에 의지하여 밥을 먹고 산다[靠天吃飯]는 말이었다. 날씨는 농사와 우리의 생계(生計)에 결정적 요인이었기 때문. 그래서 농부의 날씨 얘기는 날마다 의 생활이며 삶의 핵심적 주제였다. “처서에 비가 오면 독의 곡식도 준다.”는 속담이 지금 우리에게 실감이 나는가? 아마도 10중 8, 9는 그 속담의 의미를 간파하기 어려울 것이다. 반달이 앞서 오는 입추(立秋)에 오는 비는 희우(喜雨)이었으니 한창 더운 때에 비가 흡족해야 곡식이 잘 자라고, 처서의 비는 근심의 비[愁雨]가 되는 까닭은 벼를 중심으로 온갖 과일이 성숙하고 잘 익어야 하는 적기이므로 비가 오면 그만큼 황숙(黃熟)이 더뎌지고 영향을 입기 때문이다. 이렇게 오늘처럼 비가 오는 처서엔 농부의 근심이었다는 뜻이다. 코로나 전염병이라, 인플레이션이네, 우크라이나 전쟁 입네 하면서 세계적으로 곡물 가격이 오르고 식품비가 고공 행진이라며 세상이 걱정을 하는데 가을 농사마저 성숙에 지장이 있어서 야 되겠는가.

 농사꾼은 하늘에 운을 맡기고 살 수밖에 없어서 눈만 뜨면 하늘 먼저 쳐다보았으나 우리가 지금은 대개 도회(都會)의 아파트에서는 하늘을 쳐다보는 경우가 별로이다. 비가 오거나 날이 맑거나 기분은 차이가 있지만 내 밥그릇에 쌀이 줄지는 않으니 처서에 비가 오든 맑든 대개는 아랑곳하지 않고도 잘 살 수 있는 세상이니까. 그래서 현대인은 하늘 쳐다보고 밥을 먹지는 않는다. 직장에서 일하면 내 통장으로 월급이 들어오니 내 쌀 창고는 어김이 없지 않는가. 그러나 우리의 옛날은 격물치지(格物致知)의 기본으로 세상과 사물을 보고서 상황을 이해하고 내 삶을 영위했다. 밥상이 들어오면 먼저 반찬을 보고 거기에 맞추어서 밥을 조절하여 먹어야 맛이 있고 조화할 수 있듯이 날마다 하늘을 보고서야 날씨에 따라 내 뒤주를 헤아릴 수가 있으니 그렇게 따라서 살 수밖에 없지 않았는가. 처서에 비가 와도 직접 근심은 아니 될지라도 우리의 속담은 곧 우리의 역사였으며 우리의 문화가 아니었나.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오는 이 가을, 하늘에선 가을이 뭉게구름 타고 온다네. 예전에 성가시던 모기도 입이 삐뚤어진다니 책장의 먼지를 떨고 한 권의 알찬 책이라도 읽어야지 않으랴. ‘처서에 장 벼’라 해서 논들에 벼가 다 자라서 모두 패는 때가 아름답지 않았는가! 오후엔 비도 그친다니 천 금 같은 추양(秋陽)이 풍년으로 바뀌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