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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글

반백년 즈음에

반백년 즈음에


 

어머니 뱃속에서 느긋하게 유영하고 있던 어느 날,

깜짝 놀라 세상 밖으로 나왔더랍니다.


 

새 시대를 예고하는 혁명의 총소리를 출발신호로 해서

혁명둥이 우리의 삶이 시작된 것이지요. 혁명에 편승하여 우리의 삶은 항상

신구와 보혁 그리고 가난과 풍요를 가르는 경계에서 호흡을 하였습니다.


 

어둡고 침침하던 호야불이

외양간 황소불알 같은 백열등으로 바뀌어

휘영청 화안한 대명천지 불야성 세상이 도래하고,


 

신작로 울퉁불퉁 자갈길은 매끄럽고 쫀독한 골땅으로 포장되고,

이엉이어 겹겹이 수북하던 초가지붕은 골골이 골진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뀌었죠.


 

어쩌면 우리의 지난 날은 구시대의 끝물과 신시대의 첫머리를 오가며

그야말로 팽팽도는 소용돌이 속 세상을 살아왔으리라.


 

우리의 탄생에 축포를 울려주었던 혁명가가, 그를 따르던 이의 총탄에

스러져 가던 날, 누군가 까만 교복에 민머리로 정경과목 “김남진” 선생님께 물었었죠.

앞으로 세상은 어찌될꺼냐고요.  선생님 대답하시길 “많은 변화가 있을 거이다.”


 

그 후로 우린 제복을 벗고 머리를 기루며 사회로, 대학으로

흩어졌죠.  선생님 말씀대로 많은 변화가 있었고, 지금 생각하면

대부분이 순방향으로의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고교를 졸업했어도 우린 태생적 변곡점으로서

줄곧 변화의 첨병일 수밖에 없었죠.


 

신축생을 기점으로 본고사가 없어지고

캠퍼스 교련 군복무 단축이 사라지더니


 

대학 졸업 즈음엔 그토록 요란코 코를 잡게 했던

데모행렬 마저 꼬릴 감추고 올림픽 모드로 전환하였죠.


 

사회에 던져져선 언필칭 삼팔육 세대니 뭐니 해서

볼펜과 자판의 경계에서 일순간 허둥거리기도 했죠.

이젠 사오정도 뒤켠으로 밀려난 지금.


 

우리 나이 쉰 살, 쉬기 시작하는 나이인가 봅니다.

좋게 표현하자면 발효의 초기이죠. 숫자로는 반백, 머리털도 반백이네요.


 

이렇듯 뒤돌아본 우리의 삶은

변화의 물결 한 가운데에 서 있었습니다.


 

앞으로는 어떠할까요. 이젠 이별에 익숙해질 때입니다.


 

벌써 아들딸은 이미 우리 곁을 떠난 지 오랩니다.

설사 한 집에 같이 있어도, 같이 밥을 먹어도 예전의 그 새깽이는 아닙니다. 


 

그 마저도, 제 둥지를 마련해서 눈 밖으로 멀어져 갈 터이지요.


 

왠지 오늘

여름 햇살에 빛나던

스팡클 잎사귀를 모두 떨궈 버린

나뭇가지 사이로 드러난 빈 둥지가 눈을 아프게 찔러댑니다.


 

요사이

밀려드는 우편물이란

거개가 부고장과 청첩장들입니다.

이들 모두 이별과 작별의 메신저일 뿐입니다.


 

그래도 살아갈 만한 한 구석이 남아 있음은

다름 아닌 여기 모인 친구들 때문일 터.


 

부모님이 나와 함께한 시간보다

자식새끼와 함께 지낸 세월보다


 

빠-알간 얼굴로 만나 지금 쉬어가는

너와 내가 함께했고 함께할 시절의 길이가

훨씬 긴 것임을 우리 가슴에 지워지지 않을

문신으로 새겨 서로에게 고마워하여야 할 것입니다.  


 

고맙다

친구야!